언제 받아도 도통 낯설기만 한 연락이 있다. 번번이 가슴이 내려앉고 정신이 아득해진다. 가까운 사람일수록 강도가 더 크지만 친분이 깊지 않은 이의 소식이어도 그렇다. 부고(訃告). 누군가 세상을 떠났다는 이야기는 몇 번을 들어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코로나19 대유행이 시작된 이후 나는 몇 차례의 부고를 받아 들었다. 지나간 일에 대한 가정은 별 의미가 없지만 코로나 대유행이 아니었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라는 생각이 들면 당혹감이 밀려온다.
얼마 전에도 친구 아버지의 부고를 들었다. 갑작스러운 일이었다. 역시나 코로나 때문이었다. 임종은 지킬 수 있었는지 물었다. 친구는 굳게 다문 입술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휴대폰 영상통화 화면 너머로 겨우 마지막 모습을 뵐 수 있었다고 한다. 사랑하는 이의 마지막 순간을 함께할 수 없다는 게 야속하지만 어찌할 도리가 없는 상황이다. 코로나 사망자들은 그렇게 아무런 준비 없이, 온전한 작별의 시간을 갖지 못한 채 오랜 이별을 맞곤 한다.
세상을 떠난 이의 소식이 가장 많이 오가는 장소 중 하나는 장례식장일 것이다. 가족과 친구와 지인을 잃은 경험이 있는 이들이 마주 앉아 또 다른 죽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곤 한다. 까닭 없이 닥쳐온 누군가의 불행이 유별난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주고받으며 서로를 위로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친구 아버지의 장례식장에서도 우리는 많은 이들의 안타까운 마지막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실제로 코로나 탓에 많은 이들이 죽었다. 코로나 대유행으로 전 세계에서 600만명 이상이 사망했다. 기대수명은 평균 16년가량 앞당겨졌다. 이는 예순여섯이 넘도록 등산을 다니며 건강하게 살았을 누군가의 어머니가 코로나에 감염돼 50세에 느닷없이 세상을 떠났다는 의미다. 칠순 즈음에 책 한 권을 내고 싶었던 누군가의 아버지가 54세의 나이로 갑작스레 일기를 마감했다는 말이기도 하다. 너무 많은 사람이 황망하게 일생을 마쳐야 했다. 코로나만 아니었다면 없었을 일이 일어났다는, 무의미한 가정을 자꾸만 하게 된다. 원인이 분명한데 이를 완전히 제거할 수 없으니 그저 답답함만 쌓일 뿐이지만 말이다.
코로나 일일 신규 확진자 수가 30만명을 넘어섰다. 확진자가 3명만 나와도 가슴 졸였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햇수로 3년이나 됐다. 2020년 1월 코로나 대유행이 시작된 이후 전 세계에서는 4억5200만명의 확진자가 나왔다. 이 가운데 10일 기준으로 약 602만명이 사망했다. 숫자가 이렇게 쌓여가는데도 가까운 이들의 사망 소식을 들을 때면 이 무고한 죽음들이 익숙해지지 않고 있음을 다시금 느낀다.
코로나로 인한 변화가 어느새 생활로 스며든 것도 있다. 외출할 때면 언제나 마스크를 쓰는 것, 오피스 건물에 들어서면 체온을 체크하는 것, 수시로 손을 씻고 몸의 미묘한 변화에도 긴장하며 스스로 코로나에 감염된 것은 아닌지 살피는 것까지 이제 꽤나 익숙한 일이 됐다. 지금까지 없던 루틴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며 그럭저럭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가끔 TV 드라마에서 마스크 없이 돌아다니는 것을 보다가 나도 모르게 “그러고 밖에 나가면 안 된다”는 말이 절로 나오거나, 더 이상 QR체크를 하지 않는데도 식당 앞에서 습관적으로 스마트폰을 흔들며 피식하는 일도 종종 있다.
하지만 잃은 것들을 떠올려 보면 많은 게 낯설어진다. 감염병 시대는 여전히 쉬이 적응되지 않는다. 코로나 시대, 세 번째 봄을 맞고 있다. 다가오는 봄에는 상실의 숫자가 빠르게 커지지 않기를 바란다.
문수정 산업부 차장 thursda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