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차 시장 커지는데… 위기의 자동차 부품업체 ‘사중고’

입력 2022-03-11 04:04

내연기관차 엔진 부품을 생산하는 A사의 지난해 매출액은 370억원 정도에 그쳤다. 2017년 약 660억원에서 4년 만에 거의 반토막 났다. 차량용 반도체 공급난으로 빚어진 신차 생산 차질 등이 매출 급감에 영향을 미쳤다. A사뿐만 아니다. 자동차 부품업계 전체가 위기에 빠졌다. 완성차 업체들은 전기차 개발에 과감한 투자를 단행하면서 ‘미래차 전환’에 속도를 붙이고 있지만, 부품업체들은 잇따른 악재에 생존을 걱정하는 형편이다.

10일 자동차산업연합회(KAIA)에 따르면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등록된 자동차 부품업체 82곳 가운데 적자를 본 기업은 지난해 1분기 18곳에서 3분기 35곳으로 늘었다. 차량용 반도체 공급난으로 자동차 생산에 차질이 생기면서 일감 자체가 줄어든 탓이 크다.

여기에 코로나19에 따른 인건비 부담도 커졌다. 외국인 근로자가 한국에 들어오지 못한 탓에 내국인을 고용하면서 비용이 크게 증가했다. 오미크론 확진자 급증으로 생산인력 구하기는 더 어려워졌다. 글로벌 공급망 붕괴로 부품 생산에 들어가는 원재료 가격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물류난에 따른 운송비 급증까지 타격을 주고 있다.

내연기관차의 전동화 전환이 급속하게 진행하면서 자동차에 들어가는 부품은 줄거나 사라질 상황이다. 하지만 부품업체는 수익성 악화로 전기차로의 공정 전환이 한층 어려워졌다. 자동차산업연합회가 지난해 9~10월 자동차 부품업체 300곳을 조사한 결과, 응답 업체의 56.3%는 전기차·자율주행차 등 미래차 분야에 진출하지 못하고 있다. 미래차 분야에 진출은 했지만 수익을 내지 못한 기업도 23.7%에 이른다.

관건은 자금 조달이다. 지난해 자금 조달 여건이 전년보다 악화했다는 응답은 46.3%에 달했다. 정만기 자동차산업연합회 회장은 “미래차 전환 부담과 반도체 확보 난항, 주 52시간제 적용,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외국인 근로자 확보 어려움에 설상가상으로 최근 우크라이나 사태의 장기화 우려까지 가세하면서 자동차 부품업체는 생존 자체를 우려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자동차 부품업체의 붕괴는 고용 악화로 이어진다. 지난해 6월 기준으로 자동차 부품업계 종사자는 약 22만8000명이다. 2016년보다 1만5000명 정도 감소했다.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현대차그룹 등 일부 대기업을 제외하면 대부분 부품업체들은 자금·인력 부족 등으로 미래차 시대에 대비하지 못하고 있다. 부품업체가 무너지면 국내 자동차 생태계가 근본부터 흔들리는 만큼 그랜드 플랜이 조속히 마련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자동차산업연합회는 최근 3차례 자동차 부품업계 간담회를 열고 대정부 건의서를 마련해 기획재정부, 산업통상자원부, 중소벤처기업부, 고용노동부, 금융위원회 등에 제출했다. 부품업체들은 주 52시간제 시행에 따른 근로시간 단축으로 ‘투잡’을 뛰는 근로자가 늘어 안전사고 위험성이 커졌다고 호소한다. 금융권이 내연기관 중심 업체의 기존 대출금을 회수하는 바람에 어려움도 가중되고 있다고 했다. 자동차산업연합회 관계자는 “정부는 이런 상황을 고려해 현장 목소리에 보다 귀를 기울여 실효성 있는 대책을 조속히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용상 기자 sotong20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