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빵과 장미

입력 2022-03-11 04:05

집에 오니 함께 사는 이가 빵을 구워놓았다. 3월 8일 세계 여성의 날을 기념하기 위해 준비한 것이었다. 빵은 장미와 함께 오랫동안 여성 노동자들의 생존과 권리를 위한 상징이었다. 이날의 기원은 110여년 전 미국의 여성 노동자들에게서 출발하지만 비단 미국뿐이었을까. 한국에서도 임금 차별, 장시간 노동, 부당 해고에 반대하며 투쟁한 여성들이 있었고, 오늘도 일터와 거리에서 고군분투하는 이들이 있다. 빵을 바라보고 있자니 그들의 얼굴이 떠올랐고, 그중에는 엄마도 있었다.

엄마는 젊은 날 섬유 공장과 텔레비전 공장에서 일했다. 결혼 후에는 육아하면서 식당을 운영했다. 그리고 마트에 취직해서 8년을 보냈고, 현재 청소 일을 한다. 엄마는 10대부터 60대인 지금까지도 쉬지 않고 일했지만 월급이 오르거나 경력이 쌓인 적이 없었다. 2년이 넘기 전에 퇴사를 권유받았고, 재입사를 하더라도 늘 새로 시작하는 계약직과 조건이 같았다. 이런 상황에서도 엄마는 일하는 것을 좋아했다. 일은 남편에게서 경제적 자유를 확보하는 일이자 사회생활이자 가족의 생계를 해결할 수 있는 수단이었기 때문이다. 부모님은 맞벌이 부부였지만 생활비를 마련하는 쪽은 늘 엄마였다. 그러니 나를 먹여 살린 것은 말 그대로 엄마의 노동이었고, 나는 그 노동으로 지은 밥을 무던히도 먹고 자랐다.

엄마를 생각하면 겨울에 냉장고를 오가던 모습이, 다리를 주무르던 모습이, 마감 할인 상품을 잔뜩 사들고 오던 모습이 아른거린다. 그동안 많은 여성이 가족과 타인을 돌보았던 것은 도덕적 의무감이나 사회적 역할 때문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누군가를 돌보는 일에 당연함이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엄마이자 선배 노동자였던 그의 삶을 존경하지 않을 수 없다. 일터에서 하루를 시작했을 엄마와 또 일터 안팎에서 오늘을 살아갈 이들에게, 글로 구운 이 빵을 나누고 싶다. 장미와 함께. 오늘도 수고하셨습니다.

천주희 문화연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