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여야 대선 후보들은 택시업계와 만나 정부 재정을 투입해 ‘공공 택시 호출 애플리케이션(앱)’을 만들겠다는 약속을 했다. 모빌리티 플랫폼인 카카오T가 사실상 독점이 된 상황에 따른 택시업계 고충과 수수료 부담을 개선하겠다는 취지에서다.
하지만 공공 택시 호출 앱 추진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당장 이미 다양한 서비스로 경쟁하고 있는 민간의 택시 앱들과 견줘 공공 호출 앱이 편의성, 서비스 등에서 우위를 점하지 않으면 혈세 낭비에 그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다양한 민간 업체가 경쟁을 벌이는 모빌리티 시장에 공공이 무리하게 개입하면 오히려 시장을 왜곡시키고 관련 산업을 위축시킬 수 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지난달 택시업계와의 정책 협약식에서 “경기지사 시절 ‘배달특급’(공공 배달앱)을 만든 것처럼 택시에도 공공 호출 앱을 만들어보려 했는데 제동이 걸렸다”며 “(대통령이 되면) 전국 단위의 호출 시스템을 만들 생각”이라고 말했다.
앞서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도 택시업계 협약식을 열고 “택시에 대해서만은 정부가 어느 정도 재정을 투입해서 플랫폼을 만들면 (공공) 배달 서비스와 달리 잘 운영될 수 있을 것”이라며 공공 택시 호출 앱 개발에 나서겠다는 뜻을 밝혔다.
택시업계에서 카카오의 시장 영향력 확대와 가맹브랜드 진출, 수수료 부담 등에 대한 비판이 제기된 데 따른 호응 성격이다. 지난해 8월 기준 전국 택시기사의 92.8%가 카카오T에 가입한 상황에서 카카오T는 승객 평점이 낮은 기사의 유료 멤버십을 해지할 수 있도록 약관을 개정했다.
카카오T가 가맹 택시(카카오T블루)에 ‘콜 몰아주기’ 등을 한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두 후보는 이 사안을 ‘플랫폼의 갑질’로 규정하고, 공공이 운영하는 전국 단위의 공공 택시 호출 앱 개발을 대안으로 거론한 것이다.
하지만 모빌리티 업계 내에서는 공공 호출 앱의 성공적인 정착 가능성에 물음표를 제기하는 의견이 많다. 앞서 일부 지자체에서도 공공 택시 호출 앱을 개발, 보급한 사례가 있다. 대표 사례가 수원시가 개발한 ‘수원e택시’ 앱이다. 호출비와 가입비가 없는 데다 자동결제 기능까지 갖춘 이 앱은 지난해 4월 출시 이후 불과 4개월여 만에 수원 택시기사의 87%가 가입하는 등 단기간에 자리매김하는 듯했다. 승객도 5만명 이상 가입했다. 하지만 다른 택시 호출 앱 알람이 올 때 화면이 꺼지는 등 기술적 문제가 불거졌다.
서울에서도 서울시가 만든 선불교통카드 운영업체 티머니가 서울개인택시운송조합과 제휴해 ‘온다’란 택시 호출 앱을 출시, 호출 수수료를 받지 않고 운영해 오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카카오T의 아성을 넘지는 못하고 있다. 기술력과 인지도 측면에서 후발주자들이 극복하기 어려운 장벽이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업계 관계자는 9일 “카카오는 방대한 지도 데이터베이스(DB)에 수년간 누적된 이용자의 패턴 등까지 합쳐 다른 업체가 쉽게 따라가기 어려운 지위까지 갔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카카오의 독과점 논란을 해소한다며 공공이 택시 호출 앱 시장에 뛰어드는 게 현실적으로 쉽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유정훈 아주대 교통시스템공학부 교수는 “모빌리티 시장은 카카오 외에 다른 유수 대기업들도 뛰어들고 있지만, 여전히 시장 점유율이 높지 않은 실정”이라며 “정부가 뛰어들기보다는 민간에서도 카카오 외에 2~3개 이상의 ‘플레이어’들이 경쟁할 수 있도록 여객운수법 등 관련 규제를 완화하는 방향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 내에서도 공공 택시 호출 앱 개발에 대해 반신반의하는 기류가 감지된다. 한 정부 관계자는 “공공 호출 앱을 만드는 것 자체는 기술적으로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지만, 시장에서 소비자들의 호응이 없으면 결국 세금만 낭비하는 꼴이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공공 호출 앱 개발 외에 정치권이 약속한 택시업계 지원 정책에서도 실현 가능성이 다소 떨어지는 내용이 보인다. 여당은 택시를 ‘준(準)대중교통화’해서 택시가 출퇴근 시간만 제외하고 버스전용차로로 다닐 수 있도록 허용하는 방안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버스전용차로 이용 자격을 부여하는 것 자체는 시행령 규정 사안인 만큼 대통령 지시에 따라 바로 개정할 수 있다.
하지만 현행 규정과 충돌하는 문제가 있다. 현재 규정상 버스전용차로는 9인승 이상(일반도로는 16인승 이상) 승합차나 6명 이상 승차 시에만 이용할 수 있도록 규정돼 있다. 택시에 대해 이를 허용할 경우 특혜 논란이 일 수도 있고, 버스 이용 편의를 저해할 우려도 있다. 한 교통 전문가는 “해외에도 택시를 버스전용차로로 다니게 허가한 사례가 없다”고 말했다.
국민의힘은 택시가 소규모 화물운송업을 겸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검토한다는 방침이다. 승객이 없는 시간을 활용해 가외 수입을 얻을 수 있도록 하는 취지다. 하지만 화물차 업계의 반발이 가장 큰 장벽이 될 전망이다. 화물차 업계는 화물차가 택시보다 더 강력한 대수 규제 등을 적용받고 있는 상황에서 택시 업계의 화물운송업 진출이 ‘밥그릇’을 빼앗는 결과가 될 수 있다고 경계하고 있다. 이미 국내 한 스타트업이 택시의 소화물 운송 사업을 허용해 달라고 규제 샌드박스를 신청했지만, 정부는 2년 넘도록 결론을 못 내고 있다.
세종=이종선 기자 remembe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