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 키이우(키예프)와 함께 우크라이나 전쟁 최대 격전지가 되고 있는 남부 연안 오데사는 유서 깊은 항구도시다. 1905년 제정 러시아 시대 ‘전함 포템킨’의 반란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차르의 학정을 못 견뎌 봉기한 오데사 시민들이 대규모 시위를 벌이던 항구에서 포템킨호는 이들을 진압할 수병을 태운 채 진입하고 있었다. 수병들은 지휘관의 명령을 따르지 않고 전함의 키를 돌려 제3국으로 향했다. 그러나 오데사 시위는 러시아 제국군의 총칼에 무참히 짓밟혔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8일(현지시간) “항구에서 도심으로 올라가는 ‘오데사의 계단’엔 아직도 당시 희생된 시민들의 핏자국이 보인다”면서 “이 유서 깊은 장소는 현재 우크라이나군과 시민이 설치한 장애물들로 접근이 차단됐다”고 보도했다.
관광객들이 찾던 카페 앞엔 바리케이드가 설치되고, 그랜드 오페라하우스 주변엔 모래주머니 진지가 가득찼다. 신문은 “여느 때면 오데사 중심가를 가득 채운 가판대에 특산품인 굴이 가득했다”면서 “이제 이곳은 우크라이나 국기가 장식된 우크라이나군 기부센터로 변신했다”고 전했다. 이 일대 식당은 매일 8000명분의 음식을 만들어 정규군과 지역방위군 대원들에게 제공하고 있다.
가구 사업을 하는 자원봉사자 니콜라이 비크냔스키는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내 텔레그램 계정을 통해 의약품 침낭 옷가지 등 우리가 필요한 물품을 알렸다. 서방의 지원품이 오고 있지만 첫 1주일은 우리가 군인들을 도와야 한다”고 말했다.
러시아군은 오데사에 최근 점령한 헤르손, 격전 중인 미콜라이우 등지를 통해 육군 병력을 모으면서 해상으로는 크림반도에 주둔하던 군함들을 대거 이동시키고 있다.
인구 100만명의 오데사는 우크라이나에서 키이우, 하르키우에 이어 세 번째로 큰 도시이자 수출입 물량 대부분을 처리하는 최대 항구도시다. 이곳이 점령당할 경우 우크라이나로선 최대 전략지 중 한 곳을 빼앗기는 셈이다.
러시아를 사용하는 친러시아 성향 시민들이 많이 거주하는 오데사의 여론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같은 민족”이라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발언에 동조하는 분위기였다. 지난해 9월 실시된 여론조사에선 무려 68%가 푸틴 대통령의 발언에 동의했으며 38%가 러시아와의 유대를 강화해야 한다는 견해를 밝혔다.
하지만 전쟁이 터지자 여론은 180도 달라졌다. 겐나디 트루하노프 시장부터 바뀌었다. 친러파였던 그는 요즘 우크라이나의 주권 수호 의지를 강하게 표명하고 있다.
영국 일간 더타임스는 아름다운 항구도시 오데사의 중심가가 대전차 장애물과 바리케이드로 뒤덮였고, 거의 모든 거리에 철조망이 설치돼 있다고 전했다. 신문은 “오데사 방위사령부에선 2주일 전만 해도 회계사, 검사, 그래픽디자이너였던 시민들이 자원병으로 지원해 전투와 응급조치 훈련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해양 엔지니어 알렉산드르(46)는 “우리는 우리 땅과 집을 지킬 수밖에 없다”면서 “러시아인들이 괴물이지만 우리는 살아남을 것이고 그들은 그렇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한편 AP통신 등은 수미에서 폴타바까지 개설된 인도적 통로를 통해 5000여명이 대피했다고 우크라이나 당국이 발표했다고 전했다. 수미 주민들의 대피는 전쟁 개시 이후 인도주의 통로를 통한 첫 대피 사례다.
신창호 선임기자 proco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