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국제사회의 러시아 제재에 한발 늦게 동참하게 된 원인이 외교부 제동 때문이라는 주장이 정부 내에서 제기됐다. 외교부가 문재인정부 신북방정책의 핵심인 러시아를 자극하지 않기 위해서 초기 대응에 미온적이었다는 것이다. 통상교섭본부가 외교부가 아닌 산업통상자원부 소속이었던 점이 늑장 제재의 원인이라는 외교부 입장과 배치된다.
늑장 대응 논란은 한국의 대러시아 수출 통제 조치 발표 시점 때문에 불거졌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달 24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자 곧바로 러시아 제재에 동참하겠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실질적인 경제 제재 조치는 나흘 후인 28일 외교부를 통해 발표됐다. 4일간의 시차가 발생하면서 비판 여론이 일었다.
9일 복수의 산업부 관계자는 “당시 미국 등 각국 정부가 대러 제재에 나서는 상황이어서 우리도 즉각 동참하려 했는데 외교부가 신북방정책을 거론하며 제재 조치 발효에 미온적이었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그 결과 한국은 미국의 수출 규제 조치인 ‘해외직접제품규칙(FDPR)’ 예외국 명단에서 빠졌었다.
러시아를 비롯한 북방 14개국과 경제 협력 하는 내용의 신북방정책은 신남방정책과 함께 문재인정부 대외경제정책의 양대 핵심축이다. 이 중 러시아의 위상은 각별하다. 문 대통령은 2017년 9월 열린 동방경제포럼에서 ‘9-브리지’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한국과 러시아가 조선, 가스, 철도 등 9개 분야에서 협력하는 구상이다. 신북방정책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대통령 직속 북방경제협력위원회 위원장을 맡았었다는 사실도 주목할 만하다. 제재에 동참하면 신북방정책 구상은 흐트러질 수밖에 없다. 문 대통령과 현직 여당 대표의 관심 사안이란 점이 외교부의 미온적 대응을 불렀다는 분석이다.
이 주장이 흘러나온 배경에는 외교부의 언론 플레이가 있다는 게 산업부의 시각이다. 윤성덕 외교부 경제조정관은 지난 7일 한 언론과 인터뷰에서 뒤늦은 제재 동참 이유로 외교부에 통상 기능이 없는 점을 들었다. 산업부가 통상 기능을 쥐고 있는 탓에 발목이 잡혔다는 식으로 읽힌다. 이를 두고 산업부가 발끈했다는 후문이다. 또 다른 산업부 관계자는 “외교부에 강하게 반박하자는 의견까지 나왔다”고 전했다.
그럼에도 산업부가 공식 대응하지 않은 이유는 자칫 부처 간 엇박자로 비칠 수 있는 우려 때문으로 보인다. 문재인정부가 강조한 ‘원팀’ 기조를 흩트리지 말자는 것이다. 산업부 고위 관계자는 “반박보다는 당장 문제를 해결하는 게 중요했다”고 말했다.
세종=신준섭 이종선 기자 sman32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