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등 서방이 러시아에 대한 가장 강력한 경제 제재로 꼽히던 원유·가스 수입 금지 조치를 단행하면서 세계 주요 신용평가사들이 러시아의 신용등급을 추가 강등했다. 러시아의 국가 부도 사태가 임박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 제기된다.
세계 3대 신용평가사 중 하나인 피치는 8일(현지시간) 러시아의 장기신용등급(IDR)을 ‘B’에서 ‘C’로 6단계 강등했다. 피치 신용등급 체계에서 C등급은 채무불이행(디폴트) 또는 이와 유사한 과정이 시작됐음을 의미한다. 피치는 “C등급은 국가 부도가 임박했다는 우리의 시각을 반영한다”고 설명했다. 러시아가 서방의 강력한 제재 속에 채무를 상환할 의지와 능력을 상실했다고 판단한 것이다.
앞서 무디스도 지난 6일 러시아 신용등급을 종전 ‘B3’에서 ‘Ca’(디폴트 임박)로 2단계 내렸다. 로이터통신 등 외신은 러시아가 다음 국채 만기일인 오는 16일 첫 디폴트 위기를 맞을 것으로 전망했다.
앞서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 대국민 연설을 통해 러시아 원유, 가스, 에너지의 미국 수입 금지 방침을 발표했다. 그는 “러시아산 원유는 더는 미국 항구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이라며 “우리는 ‘푸틴의 전쟁’에 보조금을 지원하는 일원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러시아 경제의 ‘돈줄’을 틀어막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압박하겠다는 것이다.
이번 조치는 에너지 가격 인상과 그로 인한 인플레이션 피해를 감수하고서라도 정면 대응에 나서겠다는 의도로 해석된다. 바이든 대통령은 “미국도 치러야 할 비용이 있을 것”이라며 “푸틴의 전쟁이 주유소를 찾는 미국의 가정에도 피해를 주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가격 상승을 ‘푸틴의 인상’으로 규정하고 에너지 기업들에 “이 상황에서 미국 소비자를 착취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다만 대러 에너지 의존도가 높은 유럽은 단계적 중단 조치로 방향을 정했다. 영국 정부는 올해 말까지 러시아산 원유 수입을 단계적으로 중단하기로 했고, 유럽연합(EU)은 러시아로부터의 가스 수입을 3분의 2로 줄이기로 했다.
임송수 기자 songst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