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산불로 삶의 터전을 잃은 이재민들도 제20대 대선에 참여해 소중한 한 표를 행사했다. 산불 진화대원들 역시 짬을 내 투표에 참여한 뒤 다시 현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강원도 동해 산불로 집이 모두 타버린 이재민 신원준(75) 손복예(66)씨 부부는 9일 망상초교 투표소에서 한 표를 행사했다. 신씨 부부는 강릉 옥계 산불로 집과 창고 등 모든 것을 잃었다. 손씨는 “피해 복구가 이뤄져 우리도 희망을 품고 살아갈 수 있게 도와줄 후보를 뽑기 위해 투표했다”고 말했다.
경북 울진읍 주민 홍상표(71)씨는 이날 임시신분증을 만들어 투표했다. 홍씨는 “신분증이 다 타버려 걱정했는데 울진군 안내를 받아 임시신분증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홍씨는 울진국민체육센터에 머무는 이재민들과 함께 경북도선관위가 마련한 미니버스를 타고 울진초교를 방문해 투표했다. 이재민 김강수(77)씨는 “산불로 집이 모두 탔지만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투표는 해야 한다”고 했다.
울진군 북면 부구초교에서 투표한 이재민 전남중(84·사진)씨는 주민등록증 발급신청확인서를 들어 보이며 “이걸 들고 투표하기는 처음이라 얼떨떨하다”고 했다. 현재 울진 이재민대피소에는 180여명이 머물고 있다. 경북도선관위는 버스 20대를 동원해 이재민 투표를 도왔다.
산불 진화로 피로가 누적된 산불 진화대원들도 잠시 짬을 내 한 표를 행사했다. 강원도 삼척시 사곡리 산불 현장을 밤새워 지킨 한 소방대원은 “사전투표를 못 해 오전 근무교대 후 복귀하면서 투표했다”고 말했다. 삼척시는 “현장에 투입되는 삼척시 공무원들의 투표를 위해 진화 현장 집합시간을 2시간 늦췄다”고 말했다.
산불 진화를 위해 원정을 온 군인 등 일부는 산불과 사투를 벌이느라 주권 행사 기회를 놓쳤다. 사전투표는 산불 진화 탓에 참여할 수 없었고, 본 투표는 주소지에서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산불 진화에 참여한 진화대원은 “진화하느라 사전투표를 못 했고, 주소지가 다른 지역이어서 본 투표도 못 했다”며 “같은 처지인 대원들이 대략 100명은 되는 것 같다”고 했다.
동해=서승진 기자 sjse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