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의 주를 만난 사람들] 주님을 마음에 두기 싫어 주변인으로 맴돌다 회개하고 내 마음의 주인으로 모셔

입력 2022-03-14 03:09

권력이나 명예, 돈에 대한 욕심 없이 소박한 꿈을 이뤄가는 행복 속에 살았다. 언제부터인가 ‘하나님은 사랑이시라’는 말에 의문을 가진 뒤부터 예수님과 먼 문화적 기독교인으로 생활했다. 내 뜻으로 태어난 것도 아니고, 70~80년 짧은 인생에 한 일로 영원한 시간인 천국과 지옥으로 나눠 처분한다는 것, 그것도 지키기 어려운 조그만 관문을 통과한 합격생에게만 천국의 입장권을 주고, 나머지는 패자 부활전도 없이 지옥 불에 던져버리는 분, 인간도 3심제를 보장하는데 단심재판으로 영원한 사형장으로 끌고 가는 무시무시한 하나님이 무슨 사랑이냐며 강하게 반발했다.

또 ‘이순신 장군이 천국 갔냐 못 갔냐? 평생 예수의 ‘예’자도 못 들어 본 사람은 어쩌냐? 앞을 보지 못하거나 움직일 수 없어 죄 짓고 싶어도 짓기 어려운 사람들은 어쩌냐?’ 지금 생각해 보면 그럴 듯하게 포장된 인문학적 질문,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것처럼 보이는 논리와 지성 앞에 예수님을 믿어야 할 이유를 찾을 수 없었다. 그래서 믿지 않는 사람들과는 아예 충돌을 피해 예수님 얘기를 꺼내지도 않았다.

주일 예배는 출석하면서 즐길 것 다 즐기는 내 마음 한 구석에 천국과 세상은 4가지 중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천국과 지옥이 있다고 믿고 살았는데 죽어보니 있는 경우, 천국과 지옥이 있다고 믿고 살았는데 죽어보니 없는 경우, 천국과 지옥이 없다고 믿고 살았는데 죽어보니 없는 경우, 천국과 지옥이 없다고 믿고 살았는데 죽어보니 있는 경우. 그런데 네 번째 경우는 정말 큰일이란 생각을 하며 막연한 두려움을 품고 살았다.

연애시절, 나를 예배에 데려가기 위해 아내가 “이 땅에서는 아무리 사랑해도 같이 살 수 있는 시간이 길어야 50년이야. 천국에 가서 영원히 같이 살아야 하지 않겠어요?” 하는 진심 어린 사랑에 감동을 받고, 결혼 후 교회에 다녔다. 성령의 인도하심과 하나님의 뜨거운 사랑을 맛본 적도 있었지만 세상 앞에서 쉽게 날아갔다. 세상일은 아내도 감탄할 정도였지만 유독 예배와 말씀 교제는 이것저것 핑계거리가 생기고, 목사님은 ‘공사 중 우회도로 표지판’처럼 피해 다녀야 하는 분이었다. 목사님께서 강대상에서 아무리 절규해도 나는 항상 아웃사이더였다.

그러다 모 방송사에서 ‘오직 주 만이’라는 간증 촬영으로 온 성도가 초 집중하는 모습을 보며 ‘맴돌기만 하는 나는 뭘 하고 있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들에게는 ‘사람은 무엇을 듣느냐에 따라 그 사람이 달라진다.’는 멋진 영어 문장을 알려주면서도 나는 주말에 운전하며 집에 돌아오는 길엔 트로트 노래만 주로 들었다. 어느 퇴근길에 USB를 듣는데 어느 선생님의 간증이 내 마음을 강하게 흔들었다. 나와 같이 세상은 참 살 만하다고 하신 그분은 예수님을 만나 변화된 아내를 보며 ‘도대체 저런 변화를 준 예수님은 어떤 분인가?’를 고민하다가 아내와 같은 길을 가게 되었다는 간증에 큰 공감을 받고 결단을 했다. 그 이후 다른 분의 간증도 열심히 듣기 시작했다. 그런데 어떻게 굴복하고 변화된 삶을 살게 되었는지보다 그들의 말투, 말버릇만 귀에 들렸다. 그래도 듣고 또 듣는 가운데 드디어 성령께서 비췸을 주셨다.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로마서 말씀이 내게 하시는 하나님 말씀으로 들리며 바로 굴복했다.

‘아! 그래 이거구나. 하나님을 마음에 두기 싫어한 죄! 나는 정말 하나님을 마음에 두기 싫어했구나! 이런 나를 위해 예수님을 보내주셨는데 나의 주인으로 영접하지 않고 살았구나!’ 부활이라는 역사적 증거 앞에서, 너희들이 믿을 만한 사랑이라는 하나님의 절규 앞에서 간절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찾지 않는다는 것은 곧 하나님이 필요 없다는 뜻이고, 이게 바로 내가 주인 되어 하나님을 내 인생에서 발로 차버린 원수의 모습임을 알게 되었다. 예수님의 나를 향한 그 큰 사랑 앞에 나는 바로 회개하고 예수님을 주인으로 영접했다.

성탄절 며칠 전 어느 날, 기도 중에 하나님께서 ‘성탄절을 맞는 네 마음이 어떠냐?’고 물으시는 것 같았다. 그런데 그 말씀이 ‘내 아들이 죽기 위해 태어난 날이 너희들에게 기쁨이냐?’ 하시며 ‘네가 기쁘면 나도 기쁘다.’고 하시는 것 같았다. 물론 그동안 지옥에 대한 오해도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되며 완전히 풀어져 주님과 함께하는 기쁨의 삶을 살아가기 시작했다. 인간의 기준으로 보면 하나님을 마음에 두지 않아도 될 이유가 충분했던 사람들이, 부활하신 예수님께 인생을 맡기고 참 자유를 누리며 예수님을 전하는 부활의 증인들이 되었다. 나도 그들처럼 기쁨을 함께 누리는 자가 된 것을 생각하면 꿈만 같았다.

드디어 나도 아내와 같은 길을 갈 수 있게 되었다. 그 뿐 아니라 공동체의 지체들과 함께 힘차게 푯대를 바라보며 걸어갈 수 있게 되었다. 더 이상 교회의 주변인이 아닌, 주인되신 예수님과 동행하며 부활의 증인으로 살게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황영민 성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