젤렌스키 “숲에서, 들판서, 거리에서 끝까지 싸우겠다”

입력 2022-03-10 04:04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8일(현지시간) 영국 하원에서 실시간 화상 연설을 하고 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윈스턴 처칠 전 영국 총리의 연설을 인용하며 결사항전을 다짐했다. AFP연합뉴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8일(현지시간) 영국 하원 의회연설에서 “끝까지 싸우겠다”고 다짐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실시간 화상 연설에서 우크라이나의 투쟁을 제2차 세계대전 초기 영국의 투쟁에 비유하며 “우리는 바다에서, 공중에서, 끝까지 싸울 것입니다. 우리는 숲에서, 들판에서, 거리에서 싸울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이 결의는 1940년 6월 당시 윈스턴 처칠 영국 총리가 지금의 젤렌스키 대통령처럼 영국 하원에서 연설할 때 사용한 문구다. 당시 독일 나치 전투기는 밤마다 런던을 폭격했던 때였다고 뉴욕타임스(NYT)는 설명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나치가 당신의 나라를 빼앗으려 할 때 당신은 나라를 잃고 싶지 않았고, 영국을 위해 싸워야 했다”며 우크라이나인들도 러시아군에 맞서 영웅적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우크라니아 국기를 배경으로 국방색 반소매 티셔츠를 입고 우크라이나어로 연설했다. 외국 정상이 영국 하원에서 연설하기는 처음이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와 의원들은 헤드셋으로 실시간 통역을 들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남부 항구도시 마리우폴에 8일째 고립돼 있는 시민들을 두고 “그들은 물을 구할 수 없다고 한다”며 러시아가 병원과 대피로를 폭격해 아이들을 비롯한 무고한 시민들을 무더기로 살해했다고 비난했다.

앞서 바딤 보이첸코 마리우폴 시장은 온라인을 통해 “6살 소녀 타냐가 탈수로 사망했다”며 “어머니는 이미 숨졌기 때문에 삶의 마지막 순간 타냐는 혼자였다”고 전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들은 살 수 있었던 아이들”이라며 “그들(러시아군)이 아이들을 우리로부터 앗아 갔다”고 말했다.

그는 영국 극작가 셰익스피어의 작품 ‘햄릿’에 등장하는 명대사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를 차용해 “우크라이나인들은 살기로 결정했다”고 강조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영공에 대한 비행금지구역 설정을 서방에 다시 요청했다. 현재 영국을 비롯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국들은 러시아와의 전면적 군사충돌을 우려하며 거부한 상태다.

연설 후 영국 의원들은 기립박수를 쳤다. NYT는 “규정에 따라 박수를 금지하는 의원들에게는 보기 드문 찬사였다”고 평가했다. 존슨 총리는 “그가 의회에서 모든 이들의 마음을 움직였다고 생각한다”며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이 비참한 모험에 실패하고 우크라이나가 다시 한번 자유로워질 때까지 영국은 외교적, 인도적, 경제적 모든 방법을 동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강창욱 기자 kcw@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