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 세제 개혁 빠를수록 좋다

입력 2022-03-10 04:07 수정 2022-03-10 04:07

세금 내기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그래서 세제는 합리적이고 단순명료해야 한다. 내가 왜 내야 하는지 납득할 수 있고, 얼마나 내는지 스스로 계산할 수 있어야 제대로 된 세금이다. 그런 의미에서 문재인정부가 지난 5년간 고친 세제는 낙제점 수준이다.

대표적인 것이 종합부동산세다. 종부세의 취지는 좋다. 상위 10%가 90% 이상의 토지를 보유한 불평등한 현실을 조세정책으로 조정하는 것은 필요하다. 그러나 이를 걷는 방식이 잘못됐다. 1주택, 2주택, 3주택 등으로 분류해 세율을 달리 적용하고 또 조정과 비조정 지역으로 구분해 지역별로 다른 세율체계를 적용하고 있다. 개인과 법인 주택 역시 세율이 다르다. 이러다 보니 어려운 수학 문제가 돼버렸다. 종부세는 부과 세목인데 세금을 매기는 국세청 직원조차 산정에 애를 먹는다고 한다.

부동산 양도소득세 역시 매한가지다. 현 정부는 수십 차례 부동산 대책을 내면서 매년 양도세를 손봤다. 그러다 보니 양도세법은 본문보다 부칙이 수십쪽 많은 기형적인 법 조문이 됐다. 또 다주택자에게 지나친 징벌적 세율을 부과하면서 외려 부동산시장을 얼어붙게 만드는 부작용이 발생했다. 서울과 세종시에 각각 집 1채를 가진 한 공무원이 세종 집을 팔려고 했다가 시세차익의 70% 넘게 세금을 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매물을 거뒀다고 한다. 두 세금 모두 부동산 보유세와 거래세라는 자체적인 역할이 있는데 여기에 부동산 투기억제 기능을 억지로 집어넣으면서 지나치게 복잡해지고 징벌적인 성격을 띠게 됐다.

새 정부는 이를 심플하게 고칠 필요가 있다. 종부세 폐지 또는 통합 문제를 결정하는 것보다는 종부세 부과방식을 개선하는 게 우선이다. 징벌적 중과세율을 적용하는 양도세 역시 제자리로 돌리는 게 맞는다.

새 정부는 합리적 감세도 검토해야 한다. 문재인정부는 법인세 최고세율을 기존 22%에서 25%로 올렸다. 상위 10%에 해당하는 기업이 법인세의 97%를 부담(2020년 기준)하는 것은 불합리하다. 세 부담이 많아지면 기업은 그만큼 투자와 인건비를 줄일 수밖에 없다. 그 대신 법인세를 깎아주고 그 이익으로 주주 배당을 확대하는 방안이 합리적이다. 배당이 늘어나면 주가도 올라가고 소득 재분배 효과도 생겨난다. 이 경우 배당받는 사람이 내는 배당소득 세수와 기존 법인세 세수는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지난 5년간 대기업과 고소득자뿐 아니라 중산층 직장인들도 사실상 증세에 노출됐다. 물가와 임금은 올랐지만 소득세 과세표준은 ‘연소득 4600만원 초과~8800만원 이하’ 24%, ‘8800만원 초과~1억5000만원 이하’ 35% 등 2008년 이후 그대로이기 때문이다. 15년 동안 물가는 30% 넘게 올랐는데 과표구간은 변동이 없으니 매년 세 부담이 커진 셈이다. 최소한 물가상승률에 연동해서 매년 과세표준을 조정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 회원국 중 미국 등 19개 나라가 소득세를 물가에 연동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으니 결심만 하면 된다.

10명 중 4명은 근로소득세를 내지 않는 면세자 비율을 줄이려는 ‘용기’도 필요하다. 문재인정부 임기 동안 소득이 있으면 세금을 내야 하는 국민개세주의 원칙은 저버린 채 중산층과 고소득층에게만 증세를 강요하니 조세저항이 거세질 수밖에 없었다.

과거 모 국세청장은 직원들과의 회식 자리에서 건배사로 ‘세원은 넓게 세금은 가볍게’를 외쳤다고 한다. 새 정부 세제정책은 이 원칙에 충실하면 된다. 지난 5년간 실타래처럼 엉킨 조세제도를 단호히 끊어내는 개혁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이성규 경제부장 zhibag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