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 예능 프로’ 인기 속 ‘스포츠 교양서’ 도전

입력 2022-03-10 20:08
일본 최대 고교야구 대회인 고시엔에서 경기를 끝낸 선수들이 인사를 나누고 있다. 싱긋 제공

등산하는 여성들, 곳곳에 생겨나는 러닝 크루, ‘골 때리는 그녀들’ ‘올탁구나!’ 등 스포츠 예능 프로그램들…. 운동과 스포츠가 유행이다. 출판계도 관련 책을 쏟아내고 있다. ‘호쾌하고 우아한 여자 축구’(김혼비) ‘마녀체력’(이영미) 등은 이 분야의 성공 사례로 꼽힌다. 최근 출간된 ‘배구, 사랑에 빠지는 순간’과 ‘청춘, 여름, 꿈의 무대 고시엔’은 스포츠를 교양서로 가공하는 시도를 보여주면서 스포츠를 읽는 즐거움을 선사한다.

무한 협력의 연속… 배구의 미덕

배구, 사랑에 빠지는 순간
곽한영 지음, 사이드웨이, 312쪽, 1만6000원

‘배구, 사랑에 빠지는 순간’은 대학교수가 쓴 배구 이야기다. 저자 곽한영 부산대 사범대 교수는 지난해 열린 2020 도쿄올림픽 당시 한국 여자배구 4강 신화에 대한 분석 글을 SNS에 올려 주목받았다. 그의 글들은 배구의 매력을 제대로 알려준다는 평가를 받으며 수천 회 공유됐다.

“나는 김연경 선수보다 더 승리에 대한 열망이 뜨겁고 주변의 선수들을 그 열망 속으로 끌어들이는 힘이 강한 선수는 본 적이 없다. 젖은 장작에 불을 붙이는 가장 무식하지만 확실한 방법은, 어느 장작 하나가 나머지 장작들이 다 바짝 말라 마침내 불이 붙을 때까지 무작정 타오르는 것이다. 김연경 선수가 바로 그 무지막지하고 확실한 단 하나의 장작이었다.”


신선하고 열정적인 묘사다. 곽 교수의 배구 글이 왜 사람들을 사로잡는지 알만하다. 책은 도쿄올림픽 여자배구팀 얘기로 시작해 배구 전체로 나아간다. 배구의 역사를 파 내려가고 배구의 규칙과 기술, 선수들을 설명하고 세계 배구의 트렌드, 한국 배구의 현실까지 다룬다. 하지만 이 책은 배구에 대한 교과서가 아니다. 한 교수가 배구를 사랑하게 된 이유에 대한 설명에 가깝다.

“공격에 성공해도 웃고, 수비에 실패해도 손을 들고 미안하다며 웃고, 서로 동선이 겹쳐서 부딪혀도 웃고, 계속 서로 손뼉을 마주치고 껴안고 팔짝팔짝 웃는다. 땀 흘리며 달리는 사람들의 웃음이 이렇게 매력적인 것이라는 걸 처음 깨달았다.”

땀을 흘리며 승부를 겨루면서도 활짝 웃는 것은 배구의 인상적인 부분이다. 저자는 배구의 본질을 “즐거운 공놀이”라고 본다. 또 “어쩌면 무한한 협력의 연속이야말로 배구의 가장 근본적인 미덕일지도 모른다”고 얘기한다.

일본 최대 고교야구대회 이야기

청춘, 여름, 꿈의 무대 고시엔
한성윤 지음, 싱긋, 384쪽, 1만8000원

‘고시엔’은 100년 역사를 자랑하는 일본 최대의 고교야구 대회로 전국 4000여개 고교 야구팀이 참가한다. 고시엔은 일본 최고의 여름 축제이기도 하다. 해마다 8월이 되면 뜨거운 태양 아래 펼치지는 ‘여름 고시엔’의 드라마에 전 일본이 열광한다.

“청춘의 시기를 넘겨버린 어른들은 고시엔을 통해 자신의 청춘을 다시 느낄 수 있다. 분명 아웃될 수밖에 없는 타구에도 전력 질주하는 모습에선 어른이 되어가면서 잃어버린 순수성을 떠올리게 된다. 경기에서 패한 뒤 눈물 흘리는 장면에서는 자신의 실패 경험을 떠올리면서 같이 울어줄 것이다.”

‘청춘, 여름, 꿈의 무대 고시엔’은 고시엔을 주제로 한 국내 첫 책이다. KBS에서 25년째 스포츠 기자로 활동해온 저자는 고시엔을 구성하는 다양한 측면들을 짚어간다. 사이렌 소리로 대회를 시작하고 선수들은 빡빡머리를 해야 한다. ‘고교야구는 교육의 일환’이라는 인식, 연일 대회를 크게 보도하는 미디어의 모습도 살펴본다. 교가 제창, 헹가래 문화, 합숙 훈련, 우승 깃발 등 고시엔에서 유래한 스포츠·학교 문화도 적지 않다.

얘기는 고시엔에서 그치지 않는다. 고시엔이라는 야구대회를 통해 일본 사회·문화 분석을 시도한다. 고시엔에는 수직 사회, 아날로그 문화, 장인 정신, 남녀차별 등 일본의 특징이 반영돼 있다. 저자는 지나칠 정도로 예의 바른 선수들의 태도나 그들에게 열광하는 관중의 모습에서 종교성도 읽어낸다.

김남중 선임기자 n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