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온의 소리] 존경하는 사람들과 함께

입력 2022-03-10 03:04

새 아침이 밝았다. 매양 같은 날이지만 밤새도록 새로운 대통령의 탄생을 지켜본 뒤 맞이하는 아침은 새롭다. 어떤 후보를 지지했든 그것은 과거가 됐고, 이제 우리와 함께 새로운 미래를 헤쳐갈 지도자가 결정됐다. 그래서 설레는 마음도 있고 걱정스러운 마음도 있다. 설렘은 새로운 것에서 오는 기대 때문이고, 걱정은 불투명한 미래에서 오는 두려움 때문이다. 그러나 희망적인 것은, 새로운 미래에 발을 내딛는 것이 지도자 한 사람이 아니라 우리 모두라는 사실이다. 모두 함께라면, 서로에게 힘이 될 수 있다면, 든든하다. 더욱이 우리는 ‘존경하는 국민’이 아닌가.

선거철마다 들렸다 사라지는 아련한 단어가 ‘존경’이다. 지난 몇 달도 수없이 존경하는 국민이라는 말을 들으면서 ‘이 나라에서 진정으로 ‘내’가 존경받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졌었다. 지금의 현실은 어떠하든, 그런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투표를 했다. 이제 새로운 대통령에게 바라는 것은 단 한 가지뿐이다. 제발 ‘우리’를 존경해줬으면 좋겠다. 국민을 존경하는 것은, 아마도 정치를 시작했던 첫 마음을 기억하는 것이리라. 누구든 정치를 시작했던 그 처음에는 ‘모두 함께’할 좋은 세상을 꿈꾸었을 터이니 말이다.

존경하는 국민이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바울이 생각난다. 고린도 교회에 보낸 바울의 편지에서 ‘존경하는 사람’의 의미를 알 수 있다. 고린도 교회에서 각기 다른 지도자를 따르는 사람들 간에 분열이 생겼다. 누구를 따르느냐에 따라 자신들을 아볼로파, 게바파, 바울파, 심지어 그리스도파로 불렀고 교회는 분열의 위기에 처했다. 편지에는 이 정도 상황만 언급되지만 이를 통해서 발생했을 일들을 추정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아마도 각각 자신들이 따르는 사람이 더 훌륭한 사도이고 그러므로 자신들이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우월하다고 자랑했을 것이다. 자신들이 지도자로 삼은 사람들의 권위에 기대어 자신들의 힘을 확장하려고 했던 것 같다. 바울은 이 문제에 대해서 몇 가지 방안을 내놓는데, 그중 매우 인상 깊은 것은 지도자와 추종자들 간의 관계를 지적하는 구절이다. “바울이나 아볼로나 게바나 세계나 생명이나 사망이나 지금 것이나 장래 것이나 다 너희의 것이요”(고전 3:22)라고 말한다.

이 말은 진정으로 놀랍다. 사람들이 ‘나는 아볼로를 따른다’라고 할 때, 그것은 일반적으로 ‘나는 아볼로에게 속한 사람’이라는 의미이다. 게바나 바울을 따르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이다. 누군가에게 속하고자 하는 것은, 그의 힘을 빌리고 그가 주는 영화를 누리고자 하는 것이리라. 그러나 바울은 우리에게 익숙한 이런 사고를 뒤집는다. ‘네가 아볼로에게 속한 것이 아니라 아볼로가 너에게 속했다’라고 말한다. 물론 게바나 바울도 마찬가지이다. 힘이 있어 보이는 것은 아볼로나 게바나 바울인데도 말이다. 어디 이런 지도자들뿐이랴. 삶과 죽음, 현재 일이나 미래 일, 모든 것이 바로 ‘너 자신’에게 속해 있다고 말한다.

바울은 유명한 사람들,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아니라 무명(無名)한 ‘너희 각자’가 삶에서 주인공이라고 말한다. 이는 우리가 ‘존경하는 국민’이라는 호칭을 들어도 무색하지 않은 이유이기도 하다. 대통령이 된 지도자는 이것을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 그가 국민에게 속해 있다는 것을 말이다. 지도자를 따르는 사람들도 이것을 기억했으면 좋겠다. 자신이 지도자에게 줄이나 서서 힘을 얻을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우리는 존경받는 국민이 아닌가. 각 사람이 그리스도에게 속해 있다는 것을 기억한다면 더욱 그러하다. 각각 자신이 누구인지를 기억할 때 우리는 ‘모두 함께’ 빛나는 미래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김호경 교수(서울장로회신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