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의 비극… 무너지는 가정, 스러지는 아이들

입력 2022-03-12 04:07

부모가 자녀를 살해하는 비극은 매년 끊이지 않는다. 특히 코로나19 유행이 3년차에 접어드는 등 장기화되면서 여러 위기 신호들이 방치되다 극단적인 범죄를 낳는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경찰에 접수된 아동학대 신고 건수 역시 전년도에 비해 1만건 가까이 늘었다. 아동학대에 대한 관심이 늘면서 신고가 늘어난 것으로 볼 수 있지만 코로나19의 영향이 무관치 않다는 전문가들의 분석이 나온다. 실직이나 수입 감소 등으로 경제적인 어려움이 가중되는 상황에서 부모들의 ‘돌봄 스트레스’도 커졌다. 만남 대신 거리를 둬야 하는 사회 분위기도 가정의 고립과 단절을 심화시켰을 것이란 해석도 있다.

같은 날 벌어진 자녀 살해

지난 2일 경기도 수원에서 40대 여성 A씨가 지적장애를 갖고 있는 7세 아들 B군을 질식시켜 숨지게 한 사건이 벌어졌다. A씨는 경찰 조사에서 “경제적으로 힘들어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사건 발생 일이 B군의 초등학교 입학식 날이어서 이 사건이 준 충격은 더욱 컸다.

같은 날 경기도 시흥에서도 비슷한 성격의 사건이 일어났다. 50대 여성 C씨가 중증 발달장애를 앓고 있는 20대 딸을 살해한 것이다. 이튿날 극단적 선택을 시도했다가 실패한 C씨는 “내가 딸을 죽였다”며 경찰에 자수했다. 남편과 이혼한 뒤 홀로 딸을 키우던 C씨는 기초생활수급비와 딸의 장애인 수당 등으로 어렵게 생계를 유지한 것으로 알려졌다. 집안에서 발견된 C씨의 유서에는 ‘다음 생엔 좋은 부모를 만나거라’는 내용이 담겼다.

자녀를 살해하는 ‘비속 살해’는 수사기관의 공식 통계가 없다. 사건 발생 직후 나온 언론 보도를 통해 발생 빈도를 간접적으로 가늠할 수 있을 뿐이다. 코로나19 첫 확진자가 발생해 유행하기 시작한 2020년에는 최소 7건, 지난해에는 최소 17건의 자녀 살해 사건이 전국에서 보도됐다.

전문가들은 코로나19 유행 장기화가 자녀 살해 사건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고 분석한다. 생활고가 심해지고, 돌봄 스트레스가 커진 것이 자녀 살해나 아동 학대로 연결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봉주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자녀 살해는 어떠한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지만, 코로나19 장기화 상황 속에서 특히 장애를 가진 자녀를 돌보는 경우에는 양육 스트레스가 심해지면서 부모의 우울증이 심해지고, 결국 비극적 사건이 벌어지게 된다”고 말했다. 또 “코로나19 상황 속에서 사회적 관계가 고립되면서 경제적인 어려움도 더 크게 작용한다”도 덧붙였다.


실제 지난해 8월 경기도 수원에서 20대 남성 D씨가 3세 딸을 흉기로 살해한 사건이 있었다. 그는 딸이 태어난 2018년 8월 무렵 가상화폐 투자 실패로 4000만원 정도의 빚을 지는 등 경제적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여기에 코로나19 확산으로 회사 무급 휴가가 느는 바람에 월급도 크게 줄어 생활고에 시달렸던 것으로 전해졌다.

2020년 7월 부산에선 어머니가 지체 장애를 가진 46세 자녀를 살해한 일도 있었다. 살인 혐의로 징역 4년을 선고받은 어머니의 판결문에는 “코로나 사태로 인해 회사에 나갈 수 없게 되자 피고인과 피해자는 외출도 하지 못한 채 집에서 같이 24시간을 보내야 했다”는 대목이 나온다. 평소 우울증을 앓던 어머니는 코로나19 상황에서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으며 상태가 악화된 것으로 전해졌다.

서울경찰청 형사과 과학수사계 소속이었던 정성국 박사는 2014년 ‘한국의 존속살해와 자식살해 분석’ 논문에서 “자녀 살해 범죄가 매년 30~39건 정도 발생한다”고 분석했다. 그는 2006년 1월부터 2013년 3월까지 약 7년 3개월 동안 발생한 살인사건 중 경찰청 전산망에 입력된 기록을 전수 분석했다. 자녀 살해의 주된 동기는 가정 불화, 경제 문제, 정신 질환 등이 언급됐다. 정 박사는 “장기화되고 있는 코로나19 상황은 자녀 살해의 주요 동기들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급증한 아동학대 신고

집안에서 발생하기 쉬운 아동학대 또한 코로나19 장기화 상황에서 크게 늘었다. 경찰청에 따르면 2020년 1만6149건이었던 아동학대 신고 건수는 지난해 2만6048건으로 1만건 가까이 증가했다.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 1만4484건, 2018년 1만2583건으로 꾸준히 증가세를 보였지만 지난해는 상승 폭이 유독 도드라졌다.

이를 두고 아동 학대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커진 결과라는 분석이 나온다. 더 적극적으로 신고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경찰청 관계자는 “양천 아동학대 사건(일명 ‘정인이 사건’)이 논란이 되면서 아동학대에 대한 주변의 관심 자체가 크게 늘어난 영향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동시에 코로나19로 교류가 줄고 가정 내 고립이 심화되면서 아동학대 증가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분석한다.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 관계자는 “코로나19로 인한 경제적 어려움에 더해 자녀가 집에 머무는 시간까지 늘면서 아동학대로 이어질 위험 요소가 늘어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중대한 아동학대도 출발은 경미한 행위인 경우가 많아 초기부터 적극적인 개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교수도 “코로나19 기간에 진행된 설문조사 결과들을 보면 양육 스트레스가 높아지고 학대 경향이 높아지는 부분이 있다”며 “아동 학대의 상당 부분은 코로나로 인한 스트레스 증가, 경제적 어려움, 소통 단절 등의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이 크다”고 진단했다.

김판 기자 p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