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치 문양처럼… 번지는 ‘Z’ 표식 ‘러 민족주의’ 새 상징으로

입력 2022-03-09 04:06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한 건물에 7일(현지시간) ‘Z’가 적힌 대형 간판이 걸려 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후 이 표식은 러시아 민족주의의 새로운 상징이 되고 있다. EPA연합뉴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그들의 탱크와 군용트럭 등에 새겼던 ‘Z’표식이 러시아 민족주의의 새로운 상징으로 떠오르고 있다. Z는 어떻게 러시아 전쟁의 상징이 됐을까.

CNN과 가디언은 7일(현지시간) 러시아 청년들이 Z표식이 그려진 상의를 입은 채 국기를 들고 있는 정치선전 영상이 러시아 소셜미디어를 통해 퍼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단순 군사적 표시가 우크라이나 침공을 지지하는 주요 상징이 된 것이다.

Z표식은 지난달 19일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국경 인근에 집결했을 때 처음 발견됐다. Z는 키릴 러시아어 알파벳엔 존재하지 않는 문자다. 그런 Z표식을 놓고 군사 전문가들은 다양한 해석을 내놨다. 부대 주둔지를 뜻하는 ‘서쪽’(영어 Zapad)으로 보는 이들도 있고, ‘승리’(Za pobedu)라는 의미로 보는 이도 있었다. 일각에선 크렘린궁의 목표인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가리킨다고도 했다.

이에 대해 러시아 국영 채널1은 “러시아 군대 장비에 쓰이는 일반적 표시”라고 전했다. 그러나 영국 온라인 탐사매체 벨링캣의 아릭 톨러 연구원은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병합 때부터 러시아군 작전을 감시해왔는데, Z표식은 이번에 처음 봤다”고 전했다.

이 미스터리한 표식이 러시아 민족주의의 새로운 상징이 된 데에는 정치권의 선동이 컸다. 러시아는 Z표식을 선전 캠페인에 적극 이용하고 있다. 앞서 지난달 27일 러시아 국영 매체 RT는 공식 SNS를 통해 티셔츠와 후드티를 포함한 ‘Z상품’을 판매한다고 발표했다. 러시아 내 아파트나 거리 광고판에도 Z표식이 그려졌다.

지역 명에 Z문자를 추가하는 곳도 있었다. 러시아 남서부 도시인 카잔의 한 호스피스 병원에서는 암에 걸린 아이들에게 눈밭에서 Z대형으로 줄을 서게 하기도 했다. 카타르 도하에서 열린 2022 FIG 기계체조월드컵 시상식에서는 러시아 체조선수 이반 쿨리악이 Z표식이 달린 유니폼을 입고 나와 논란이 됐다.

가디언은 “러시아는 과거에도 정부에 대한 지지를 모으기 위해 특정 표식이나 상징을 홍보했다”며 “크림반도 합병 당시에는 제정 러시아 황실 군대 상징인 주황색·검은색 줄무늬 리본이 러시아 정부와 군대에 대한 지지 상징으로 널리 퍼지기도 했다”고 전했다.

러시아 민족주의자의 상징이 된 Z는 우크라이나 침공을 반대하는 이들에겐 협박 문자가 됐다. 러시아 유명 비평가 안톤 톨린은 “우리 집 문에서 Z표식을 발견했다”며 “내가 전쟁에 반대한다는 걸 알고 협박한 것”이라고 월스트리트저널에 말했다.

그럼에도 반전 시위자들은 오히려 Z를 풍자하는 피켓을 만들어 이들에게 대항했다. 가디언은 지난 6일 전국 곳곳에서 열린 반전 시위에 Z표식을 ‘무엇을 위해’(Zachem)로 바꾼 팻말이 눈에 띄었다고 전했다.

황인호 기자 inhovato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