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정부는 러시아의 비(非)우호국가 리스트에 한국이 포함된 것과 관련해 업종별 영향 파악에 나섰다. 대러 제재에 ‘뒷북’ 동참하는 바람에 미국 정부로부터 해외직접제품규칙(FDPR) 적용 면제도 뒤늦게 받는 등 즉각적인 대응이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국제사회의 대러 제재와 러시아의 보복성 조치는 이미 예상됐던 수순이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러시아의 루블화 결제에 따른 환차손 피해 등 산업 전반에 미치는 영향이 상당할 수 있는 데도 발 빠른 대책이 마련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뒤따른다.
산업통상자원부는 8일 여한구 통상교섭본부장 주재로 러시아의 비우호국가 명단 발표에 따른 ‘민관 대책회의’를 긴급 개최했다. 정병락 주러 대사관 상무관은 “러시아 정부의 상응 조치는 이미 예상됐던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에 따르면 러시아에 살지 않는 비우호국 국민들이 당분간 러시아로 외화송금을 할 수 없도록 하고, 비우호국에는 가격이 폭락한 루블화로 대외채무를 지급하는 조치 등이 취해질 예정이다. 비우호국 기업과 러시아 기업 간 모든 거래에 러시아 외국인투자 이행관리위원회의 승인도 필요할 전망이다.
산업계에선 “정부 대응이 제때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는 불만의 목소리도 나온다. 대러 제재에 대한 러시아의 보복 조치는 정부가 지난달 말 대러 제재에 동참했을 때부터 예견됐기 때문이다. 에너지 수급 우려와 관련해 정부는 대부분 장기계약 위주로 도입하고 있고 계약을 이행하지 않으면 페널티(벌칙)가 있기 때문에 당장 큰 문제는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산업부 관계자는 “현재까지는 러시아가 어떤 조치를 할지 구체적인 내용이 나온 게 없다”며 “현 단계에서는 대응에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FDPR 적용 면제 역시 한국이 대러 제재에 뒷북 동참한 결과라는 지적도 있다. 산업부는 이날 미 상무부와 러시아·벨라루스에 대한 적용 면제국 포함을 확정하는 내용의 공동성명을 발표했다고 밝혔다. FDPR은 미국 이외 외국 기업이 미국산 소프트웨어나 기술을 사용했을 경우 미 정부가 수출을 금지할 수 있도록 한 제재 조항이다. 미 정부가 러시아에 대한 FDPR 면제 32개국을 지난달 24일 발표했을 때에는 한국이 빠져 있었다.
한편 청와대는 이날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이 문재인 대통령 앞으로 우크라이나 사태 관련 수출 통제 및 금융제재 등 정부의 대러 조치에 대한 감사 서한을 보내왔다고 밝혔다.
세종=신재희 기자 jsh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