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드라마 ‘슬기로운 감빵 생활’과 ‘인현왕후의 남자’, ‘또 오해영’이 이달 초부터 중국판 유튜브인 비리비리(Bilibili)에서 방영되고 있다. ‘사임당 빛의 일기’와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까지 합하면 올해 중국에서 정식으로 전파를 탄 한국 드라마는 총 5편이다. 2017년 주한미군 사드(THAAD) 배치 이후 중국 정부가 암묵적으로 취했던 한한령(한류제한령)이 조금씩 풀리고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8일 주한 중국대사관 등에 따르면 CJ ENM이 제작한 드라마 세 편이 지난 3일과 6일 첫 방영에 들어갔다. 슬기로운 감빵 생활은 업로드 하루 만에 조회수가 220만회를 넘고 3000개 이상 댓글이 달릴 정도로 반응이 뜨겁다. 슬기로운 감빵 생활과 인현왕후의 남자, 또 오해영은 이날 현재 비리비리 드라마 부문 차트에서 각각 1, 2, 4위를 달리고 있다. 세 작품 모두 중국 방송 규제 당국인 광전총국 심의를 통과했다.
광전총국은 한·중 사드 갈등이 불거진 2017년 한국 드라마에 대한 심의를 중단했다가 지난달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를 시작으로 방영 허가를 내주기 시작했다. 2016년 제작된 사임당 빛의 일기는 당시 광전총국 심의를 마치고 후난위성TV가 판권도 샀지만 한한령 때문에 중국 내 방영이 무산됐다가 6년이 지나 풀린 케이스다.
이들 작품 외에도 여러 한국 콘텐츠가 광전총국의 심의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에서도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주로 콘텐츠가 소비되고 있어 이번 드라마 방영은 문화 교류 측면에서 의미가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중국은 올해 한·중 수교 30주년을 맞아 가끔씩 한국 콘텐츠 수입을 허용하는 모습을 보였다. 2020년 말 한국 게임이 약 4년 만에 중국 판호(허가증)를 받았고, 지난해 12월에는 한국 영화 ‘오! 문희’가 중국에서 정식 개봉했다. 2015년 9월 ‘암살’ 개봉 이후 6년 만이다. 특히 오! 문희 개봉은 서훈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의 중국 방문을 앞두고 이뤄져 한한령 해제 신호로 여겨졌다. 물론 중국은 정부 차원에서 한한령의 실체를 공식적으로 인정한 적이 없다.
이러한 분위기는 지난달 28일 한·중 외교장관 화상 통화 때 무르익었다. 외교부는 정의용 장관과 왕이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이 한·중 수교 30주년과 양국 문화 교류의 해(2021~2022)를 맞아 양국 국민의 우호 정서가 제고될 수 있도록 적극 노력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왕 부장은 “양국 관계가 불필요한 방해와 충격을 받지 않도록 민감한 문제를 계속해서 잘 다뤄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한한령 이전의 전면적인 개방 수준을 회복하려면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한한령으로 한국 영화나 드라마뿐 아니라 K팝 공연도 완전히 막힌 상태다. 문화예술 분야에 대한 대대적인 정풍운동을 벌이고 있는 중국이 한류가 사상 통제에 위협이 된다고 여기면 언제든 빗장을 걸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베이징=권지혜 특파원 jh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