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 1번남·2번남이라는 프레임

입력 2022-03-09 04:07

지난 주말부터 온라인에서 ‘2번남’ 밈(meme)이 돌고 있다. 밈은 유전자가 복제되는 것처럼 온라인에서 전파되고 유행하는 콘텐츠다. 2번남은 대선 기호 2번인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에 투표하는 남자라는 말이다. 이 밈은 20·30대 남성 일부에 대한 비하와 조롱의 뜻을 담고 있다. 외모가 별로면서 페미니즘에 반대하는 남성이 2번남으로 규정됐다. 온라인에서 돌아다니는 도표를 보면 2번남은 20·30대 여성뿐 아니라 모든 세대와 충돌하는 관계다. 그들은 기성세대에게는 ‘일베충’, 2000년대생에는 ‘젊은 꼰대’, 20·30대 여성에게는 ‘한남충’이다. 반면 1번남으로 규정된, 그러니까 기호 1번인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를 찍는 남성은 다른 세대와 관계가 좋다. 외모가 준수하고 연애와 결혼에 성공할 수 있으며 이웃에는 ‘싹싹한 청년’이다.

2번남 프레임이 던져지자 20·30대가 주로 찾는 온라인 커뮤니티는 전쟁터가 됐다. 이용자들은 1번남인지, 2번남인지 자신과 상대의 정체성을 점검했다. 그러곤 다른 정체성을 가진 것으로 보이는 상대를 공격했다. 그동안 온라인 공간에는 이대남(20대 남성)과 이대녀 사이 전선이 있었지만 그 갈등은 해묵은 것이었고, 다수는 이를 무시했다. 좀 더 정밀한 프레임에 남성끼리도 싸우기 시작했다. 여기에 1번녀와 2번녀까지 등장하면서 전선은 더 복잡해졌다.

나무위키에 따르면 2번남 밈은 지난 3일 예비역 장병들이 이 후보 지지 선언을 한 행사를 계기로 생겨났다. 행사에 참석한 몇몇 남성의 외모가 ‘긍정적인 측면’에서 화제가 됐고, 이어 그들의 외모와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 등의 외모를 비교하는 사진이 등장했다. 이 ‘짤’(사진)이 여성 이용자가 중심인 ‘여초’ 커뮤니티에서 큰 인기를 얻으며 2번남 밈이 퍼졌다.

2번남 밈이 9일 선거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알 수 없다. 2번을 찍으려던 남성을 소극적으로 만들어 1번 후보에 유리한 결과를 낳을 수 있다. 반대로 그들을 결집시켜 2번 후보가 더 유리해질 수도 있다. 분명한 건 모두가 예민한 시기 누군가에 의해 ‘갈라치기’가 시도됐다는 점이다.

이번 선거에서 갈라치기는 국민의힘에 일차적 책임이 있다. 윤 후보가 여성가족부 폐지와 무고죄 처벌 강화를 공약한 건 누가 봐도 페미니즘에 반대하는 20·30대 남성 표심을 얻기 위한 것이다. 이준석 대표의 ‘세대포위론’(20·30세대와 60대 이상의 지지를 얻어 민주당 지지 성향이 강한 40·50대를 압도하겠다는 전략)도 세대를 구분하고 분열을 획책했다. 2번남 밈은 이에 대한 역공으로 소비되고 있다. 일부 친여 정치인은 이를 적극적으로 이용한다. 손혜원 전 의원은 유튜브 채널에 ‘2번남을 위한 명상’ 콘텐츠를 올렸다. 이 영상은 ‘이번에 1번을 선택한다면 많은 여자가 당신을 좋아하게 될 거예요’라고 말한다. 이런 갈라치기가 촉발하는 건 혐오다. 2번남을 둘러싼 커뮤니티의 글은 서로에 대한 혐오 발언으로 가득하다. 선거가 끝나도 혐오와 미움은 그대로 남을 것이다.

정치인들은 과거에도 갈등을 고조시켜 표를 얻었다. 고질적인 지역주의 투표 성향은 1980, 90년대 정치인들이 지역감정을 악용한 탓이다. 젊은 세대의 성 갈등은 기성세대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심각하다. 틈만 나면 서로를 ‘○○남’ ‘○○녀’로 규정하고 비하한다. 성 갈등은 이미 사회 구조 안에 깊숙이 들어와 있어 언제 어떤 불행한 사건이 발생할지 모른다. 갈등이 위험 수위에 도달했다는 신호가 강한데도 이를 중재해야 할 정치는 오히려 반대 역할을 하고 있다. 너무 무책임하다.

권기석 이슈&탐사팀장 key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