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승주 칼럼] 아이 낳고 싶은 나라를 만들어 달라

입력 2022-03-09 04:20

아이 낳아 키우고 싶은 나라
일자리·집·돌봄 대책 있고
미래 비전과 희망 있다는 뜻

사상 최저 출산율 높이려면
현금 지원보다 시스템 필요
국가가 아이 돌봄 책임져야

새 대통령은 저출생 극복을
국정 최우선 과제로 삼아
임기 내내 온 힘 기울여야

치열했던 선거운동이 끝나고 본투표의 날이 밝았다. 잠시 숨을 고르고 지난 시간을 돌아본다. 서로를 향한 거친 말이 오가고, 무모하다 싶을 만치 솔깃한 공약이 넘쳤다. 대통령 후보들은 저마다 살기 좋은 대한민국을 만들겠다고 여러 말을 쏟아냈다. 우리나라는 여러 지표상 선진국에 진입했지만 그 안에 살고 있는 국민은 행복하지 않다. 세계에서 출산율은 가장 낮고 자살률은 가장 높은 수준이라는 통계가 이를 뒷받침한다. 살기 좋은 나라는 어떤 나라일까. 나는 아이를 낳아 키우고 싶은 나라라고 생각한다. 아이를 낳겠다는 것은 키울만한 여건이 된다는 뜻이다. 안정적인 일자리가 있고, 어떻게든 집을 장만할 수 있으며, 개인이 애면글면하지 않아도 될 만큼 사회적 육아 시스템이 갖춰졌다는 뜻이다. 무엇보다 내 아이가 살아갈 미래의 대한민국은 지금보다는 나을 것이라는 희망이 있다는 의미다.

지금의 대한민국에는 아이들은 줄고 노인들은 늘어난다. 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아이의 숫자를 뜻하는 합계출산율은 지난해 0.81명이다. 사상 최저이자 세계 최저 수준이다. 통계 작성이 시작된 1970년에 4.53명이다가 꾸준히 줄었다. 20년 전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결혼 건수도 수년간 줄었다. 우리나라는 점점 더 적게, 더 늦게 아이를 낳는 나라가 됐다. 한 해 출생아 수는 26만명대로 내려갔고, 평균 출산연령은 33.4세로 늦어졌다. 출산율은 앞으로 더 낮아질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이 나온다.

그동안 정부가 손을 놓고 있었던 건 아니다. 2006년 이후 4개 정부가 저출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약 380조원의 예산을 쏟아부었지만 별 소용이 없었다. 그야말로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였다. 그동안의 정부 대책은 현금 지원 성격이 강했는데 방향이 틀렸다. 정부는 아이를 낳으면 생후 24개월 동안 매월 현금 30만원을 준다. 도움이 안 되는 건 아니지만 출산을 결심할 유인책은 안 된다. 아이를 낳는다는 것은 이보다는 훨씬 복잡다단한 문제다. 당장의 현금 지원보다는 사회적 육아 시스템 마련이 중요하다.

젊은이들은 치열한 경쟁상황에 내몰려있다. 내 몸 하나 건사하기도 힘든데 결혼은 사치처럼 느껴진다. 취업은 힘들고, 집값은 너무 올랐고, 전세 구하기도 쉽지 않다. 일자리와 주거가 안정돼 결혼을 했다 치자. 그래도 아이를 낳는 건 또 다른 차원의 문제다. 아이를 누가 키울 것인가. 이게 핵심이다. 육아 휴직을 했다가 경력단절이 되면 어떡하나. 아이를 기르는데 눈치를 보게 된다. ‘독박 육아’는 엄마 아빠 누구도 원하지 않는 미래다. 조력자를 찾지 못하면 출산을 주저하게 된다. 보육이 지금처럼 개인의 책임이 되어서는 안 된다.

대선을 앞둔 마지막 TV 토론에서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는 보육을 국가가 책임지겠다고 했다. 보육 시설을 늘려 부모가 1년에 100만원 정도 내면 식사와 간식을 포함해 오전 8시30분부터 오후 6시30분까지 탁아를 국가가 책임을 지겠다는 것이다. 재원은 축적된 지방교육교부금 중 10조~15조원을 전용하면 된다고 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 역시 돌봄 국가책임제를 공약으로 내놓았다. 모든 영유아가 양질의 보육 서비스를 동일하게 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고 했다. 아이를 낳기만 하면 국가가 책임지고 키워주겠다는 약속을 믿을 수 있다면 출산을 결정하는데 중요한 동기부여가 될 것이다. 그동안 대선 때마다 유사한 공약이 반복됐으나 막상 당선된 후엔 예산 부족 등의 이유로 실현되지 못했다. 몰라서 못하는 게 아니라 의지가 없었던 것이다. 대통령이 이를 중차대한 국가 과제로 놓느냐 아니냐에 따라 실현될 수도, 밀릴 수도 있는 일이다.

오늘 대한민국 미래를 이끌 새로운 지도자가 선출된다. 그의 어깨에 짊어진 무거운 사명 중 하나는 저출생 문제 극복이다. 이대로 가다가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먼저 소멸될 것이라는 무시무시한 예측도 나온다. 첫술에 배부르지 않듯 한꺼번에 모든 것이 바뀌기를 기대하진 않는다. 중요한 것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 저출생 문제 해결에 제대로 된 방향을 잡고 임기가 끝날 때까지 온 힘을 기울여 달라. 아이의 웃음소리가 들리지 않고, 기력을 잃어가는 국가에는 미래가 없다.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격언이 있다. 지금 우리에게는 아이는 국가가 키운다는 신념을 갖고 이를 실행에 옮길 리더가 절실하다.

한승주 논설위원 sjh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