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필자가 일하는 연구원에서 ‘마을목회 시리즈’의 스물 한 번째 책으로 ‘교회건물의 공공성’이란 책을 출간했다. 이 책의 마지막 장엔 ‘교회의 선교와 주거 문제’라는 제목의 글이 있다. 요즈음 청년 주거 문제가 그 어느 때보다 심각하다. 소위 ‘영끌’을 해서 집을 산 젊은이들도 많은데 은행 이자율이 오르고 집값이 떨어질 경우 다가올 고통이란 결코 작지 않을 것이다.
이 같은 집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모든 책임을 정부에게만 물을 필요는 없다고 본다. 정부가 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할 수 있다. 거주 문제로 고생하는 미혼 젊은이들을 위해 각 마을의 좀 허름하더라도 괜찮은 집을 구입하고 잘 수리해 공동으로 거주케 할 수 있다. 오래돼 살기 힘든 집에 사는 노령층들을 위해 마을 사람들이 힘을 합해 그 집을 수리해 줄 수도 있을 것이다. 결혼하는 젊은이들을 위해 마을 주민들이 힘을 합쳐 작은 아파트 하나라도 마련해준다면 결혼을 포기하는 젊은이들이 줄어들 것은 물론 출산율도 높아지리라 생각한다.
이런 일을 위해 팔을 걷어붙인 교회들도 적지 않다. 지역의 어려운 대학생들을 위해 숙소를 제공하고, 여성 혼자 자녀를 키우는 가족들을 위해 주거시설을 싸게 빌려주며, 홀로 된 목회자 사모들을 위해 작은 아파트를 제공하는 등 주거 나눔을 실천하는 많은 교회들이 있다.
이같이 주거 문제를 개인이 해결할 문제로 보기보다는 마을 공동체적으로 접근할 문제로 보는 시각의 전환이 필요하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복지수당을 주고 저렴한 임대아파트를 제공하는 등 모든 것을 정부가 도맡아 하는 것으로 하면, 우리의 삶이 점점 정부에 종속될 우려도 있다. 모든 것을 다 의지하려 하면 정부의 힘은 과도하게 커질 것이고 시민의 목소리는 점점 작아질 것이다. 그래서 시민이 주체가 되고 정부가 돕는 방향으로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는 주민 주도적 자발성이 필요하다.
학교 교육도 정부에게만 맡기지 말고 지역주민이 나서서 질 좋은 교육을 위해 노력한다면, 우리 자녀들은 학교에서 더욱 행복해질 수 있을 것이다. 요즘 교육에 있어 시민의 목소리와 사학의 자주성을 억누르며 모든 것을 정부가 하려는 경향을 보게 되는데 좀 더 주민들의 자발성을 옹호하는 학교 교육으로 만들어나가야 할 것이다.
마을 주민들이 힘을 모아 학교 운동시설과 교실들을 아름답게 꾸미고 점심 급식도 잘사는 사람들이 반찬값을 내어 지역의 모든 아이들이 맛있게 식사하도록 한다면 어떨까. 공부에 뒤쳐진 아이들을 위해 시간이 있는 학부모들이 시간을 내어 방과 후 교육을 시킬 수도 있다. 모두가 행복한 학교를 만들기 위해 마을의 자원들을 집중할 필요가 있다.
오늘날 우리들은 인간의 행복을 너무 개인주의적인 것으로만 이해하며 사는 것 같다. 남은 어떠하든 나만 행복하면 된다는 것이 그 핵심이다. 하지만 성경이 말하는 행복은 오히려 공동체적이다. 아무도 자기의 유익을 사는 자가 없다(롬 14:7~8). 다 주님의 영광과 이웃의 평안을 위해 산다. 네가 있기 때문에 내가 있는 것이자, 우리는 이웃 사랑 때문에 현재를 사는 것이다. 나 혼자로 이룰 수 있는 행복이 십, 이십이라면 함께 만들 수 있는 행복은 백, 천이다.
최근 한국교회에서 관심을 갖고 논의하는 ‘마을목회’는 보다 큰 행복을 바라보게 한다. 서로 분리돼 혼자가 된 우리의 삶을 변화시켜 주님의 사랑 안에서 함께 의논하고 어울려 사는 세상을 추구하는 것이 ‘마을목회’의 정신 중 하나다.
고린도전서 12장 12절은 “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가 많으나 한 몸임과 같이 그리스도도 그러하니라”라고 말한다. 또 ‘한 몸의 많은 지체’라는 말이 후렴과 같이 계속 반복된다. 12절 20절 27절에 각각 세 번씩 이 말이 반복되는 것으로 교회론의 핵심적 내용 가운데 하나라 할 수 있다. 우리는 이 내용을 ‘다양성 속의 일치’라고도 표현한다. 많은 것이 하나이고 하나가 많은 것이라는 뜻으로, 삼위일체적 공동체의 생명성을 표현하는 소중한 말임이 분명하다.
마을목회는 개인적 행복과 함께 삼위일체적 공동체성이 깃든 행복을 강조한다. 이런 견지에서 마을목회는 지역사회를 공동체적 가치를 통해 구성해나갈 것을 말한다(요 17:21~23).
오늘 우리 사회의 많은 위기들은 저급한 개인주의적 삶의 방식에 기인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경제 교육 복지 의료 금융 환경 문화 등 사회 각 분야에 기독교가 강조하는 사랑의 하나됨과 공동체성을 불어넣을 필요가 있다. 개인적 이익과 이윤만을 내기 위해 혈안이 된 구조가 아니라 서로의 행복을 함께 일구어 나가려 하는 그런 기업들과 구성체들이 더욱 큰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