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기도회’로 싹튼 부흥… 이웃·세계로 사랑의 실천 넓혀

입력 2022-03-09 03:07
매주 수요일 중계충성교회에서 열린 ‘어머니 기도회’를 찾은 어머니 성도들의 기도는 교회를 부흥으로 이끌었다. 중계충성교회 제공

서울시 노원구 중계동의 중계충성교회(김원광 목사·아래 사진)는 2014년 교회 40년사를 기념하며 펴낸 책 표지에 교회 성도들의 모습을 배경으로 예배당 건물 사진을 겹쳐 이미지화했다. 책 편찬위원회는 이를 설명하기를 “성전은 교회 건물이 아니고, 바로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이라는 것을 의미한다”며 “오늘날 ‘바른 교회는 많은 성도의 헌신과 노력으로 만들어져야 한다’는 성경 말씀을 강조하려는 의도”라고 했다.


지난 7일 교회에서 만난 김원광 목사는 오늘 이 시대 교회의 필요한 역할을 묻는 질문에도 “성도 한 사람 한 사람 각자 예수의 제자다운 삶을 회복하는 것에 답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많은 이들이 코로나19를 지나며 부정적 인식이 더해진 교회가 사회를 위한 복지 활동을 넓히며 대외적 이미지를 개선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개인적으로는 한국교회가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일에 더 신경을 쓰는 게 최우선”이라고 강조했다.

교회가 비난받는 이유가 사회 복지 사역에 소홀히 했기 때문이 아니라 ‘교회다운’ 순수한 그리스도의 제자로서의 모습을 잃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중계충성교회가 늘 추구해온 것 중 하나도 ‘건강하고 행복한 교회, 이웃에게 사랑받는 교회’다. 김 목사는 “이웃을 ‘사랑하는’이 아니라 ‘사랑받는’ 교회가 되자고 한 건 교회가 이웃을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정작 이웃들은 이를 실감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교회는 성도들부터 예수를 믿음으로 인한 기쁨을 알게 하고, 이를 삶으로 살아낼 수 있도록 이끌어 세상 사람들에게 진정한 천국의 모습이 뭔지, 천국에서 누릴 행복이 뭔지를 보여줘야 한다”고 덧붙였다.

지난해 대한예수교장로회 합신 총회장으로도 선출된 김 목사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또 다른 사역 중 하나는 작은 교회 살리기다. 그는 “그동안 한국교회는 개교회 중심적인 사고를 바탕으로 사역을 전개해 왔고, 많은 교회가 내 교회만 잘 되면 된다고 생각했다”며 “하지만 이런 생각은 변화돼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개교회주의에서 벗어나 교회 공동체 의식을 회복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의미다.

그는 “코로나19를 지나며 한국의 작은 교회 1만 곳이 문을 닫았다”며 “각 교단과 노회별로 무너진 작은 교회들이 다시 일어날 수 있도록 힘을 북돋아 줄 방안을 모색해 생태계를 재구성해 나가는 것이 한국교회의 최대 숙제”라고 봤다.

김 목사가 이처럼 작은 교회에 계속 눈길을 주며 그들을 헤아리는 이유는 중계충성교회의 시작도 방 두 칸짜리 가정교회에서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는 1974년 가을 서울 동대문구 답십리 26.44㎡(8평)짜리 집에서 시작된 교회를 추억했다. 교회의 시작은 흰 종이로 덮인 작은 밥상, 그 위에 놓인 성경과 찬송가, 갓 목사 안수를 받은 김근호 목사 가정과 여교인 한 가정뿐이었다.

김 목사가 30명 남짓의 이 교회 담임목사직을 물려받은 건 1992년이었다. 97년 지금의 자리로 교회를 이전했다. 당시 교회 대지에는 사찰이 들어서 있었다. 김 목사는 “스님과 마주 앉아 계약서를 쓰던 때가 잊히지 않는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중계충성교회 성도들이 2017년 미얀마에서 진행된 의료·문화 선교여행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중계충성교회 제공

교회가 본격적으로 성장하기 시작한 건 2003년 ‘어머니 기도회’를 시작하면서부터다. 매주 수요일마다 진행되는 ‘어머니 기도회’는 교회 내 어머니 성도들이 자녀를 위해 기도하는 자리였다. 그러다 인근 지역의 교회를 다니지 않는 어머니들을 교회로 전도하며 공동체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자녀들을 위해 같이 기도하자고 하니 거부감도 적었다. 그렇게 함께 울며 기도하는 기도회에 참석했다가 많은 이들이 자연스럽게 교인이 됐다.

김 목사는 “그중에는 30년 불자였던 분도 있었다. 어머니 기도회를 통해 어렸을 적 가졌던 믿음을 잃고 방황하던 어머니들의 믿음이 회복하는 일도 일어났다”고 말했다.

교회 홈페이지에는 어머니 기도회를 통해 변화된 이들의 간증이 넘쳐난다. 현대 의학으로 완치가 어렵다는 ‘화폐성 습진’을 앓던 중학생 아들이 기도로 치유됐다는 간증부터, 신앙이 없던 남편을 전도한 사례, 기도회를 다니며 자녀의 비전을 함께 찾았다는 어머니 이야기 등 헤아릴 수 없다.

무엇보다 기도회를 통해 자신의 잘못된 자녀 교육관을 돌아보게 돼 자녀와의 관계가 회복됐다는 간증도 뜻깊다. 어머니 기도회는 7년여 만에 30명 남짓이던 교회를 1000여명 넘는 이들이 참석하는 교회로 변화시킬 정도로 부흥을 이끌었다. 어머니 기도회에 관심이 있는 교회들을 대상으로 수차례 진행한 ‘전국 목회자 세미나’에는 지금까지 1500여 교회, 2500여명 넘는 목회자 등이 참석했다.

65세 이상 지역 어른과 성도들을 섬기고자 2002년부터 시작된 사랑대학 모임 모습. 중계충성교회 제공

김 목사는 어머니 기도회가 갖는 의미를 ‘진심’에서 찾았다. 그는 “자녀를 위해 기도하는 것만큼 절절한 진심이 담긴, 끊이지 않는 기도가 어디 있겠느냐”며 “주님께서도 그런 어미의 마음에 기뻐하시며 많은 응답의 역사를 이루신 것 같다”고 말했다.

김 목사 역시 어머니 기도의 힘을 누구보다 깊게 체험한 이다. 목회자 남편을 둔 그의 어머니는 아들 역시 목회자의 길로 들어서도록 기도로 이끌었다. 신학교 생활에 흥미를 갖지 못했던 그가 하나님 말씀을 확신하게 된 것도 어머니의 중보기도 힘이 컸다. 김 목사는 “어머니 기도는 하나님 가슴에 닿는다”며 “어머니 기도의 힘과 덕을 본 사람으로서 그 빚을 항상 마음속에 품고 있다”고 했다.

어머니 기도회는 팬데믹으로 전도 집회의 기능은 잠시 멈췄지만, 다시 자유롭게 모여 예배하는 날을 소망하며 내부 성도 위주로 기도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중계충성교회는 또 경기도 남양주시 진접읍과 광주시의 외국인 근로자 쉼터를 찾아 의료 선교에도 힘쓰고 있다. 올해로 벌써 22년째다. 매주 목요일에는 노인을 위한 충성사랑대학을 열며 지역 어르신들도 품는다.

코로나19 이전 교회 예배당에서 성도들이 예배드리는 모습. 중계충성교회 제공

작은 교회 살리기 운동도 더욱 본격적으로 펼치려 한다. 교회 안에 영상 스튜디오를 만들어 설교 영상 제작, 촬영이 필요한 작은 교회를 위해 장비를 제공하고, 교회 예산을 일부 떼어 실질적으로 작은 교회들을 일으켜 세우는 일에 쓸 계획도 갖고 있다.

김 목사는 코로나19로 지쳐 있을 한국교회와 성도들에게 “시편 119장 71절에선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라고 나온다”며 “그러므로 우리 모두 함께 조금만 더 믿음으로 인내하며 고난의 시기를 이겨나가자. 그 과정에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반드시 드러나게 될 것을 확신한다”고 전했다.

마지막으로 김 목사에게 교회의 비전을 묻자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전 늘 목회 비전이 따로 없다고 얘기합니다. 이미 예수님은 성경 말씀을 통해 어떻게 살라고 다 얘기해두셨습니다. 종인 저희는 그저 주인인 하나님이 시키시는 대로 하면 됩니다. 자신의 꿈을 예수님의 꿈이라 말하고 있진 않은지 돌아보며 인격적인 성숙을 더 이루려 노력할 뿐입니다.” 김 목사의 목회 철학과 중계충성교회의 미래 사역 방향을 가늠할 수 있는 대목이었다.

임보혁 기자 bosse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