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키예프) 외곽 소도시 이르핀. 피란민들은 이미 다리가 파괴돼 어쩔 수 없이 다리 잔해 사이로 강을 건너야 했다. 이들이 다리 잔해에 접근하기 위해 도로를 달리는 순간 어디선가 날아온 박격포탄이 한 일가족을 덮쳤다.
천둥 같은 폭음과 구름이 걷힌 자리엔 일가족 4명이 쓰러져 있었다. 길가엔 이들이 언젠가 행복했던 시절 여행길에 가지고 다녔을 법한 캐리어와 백팩이 나뒹굴었고, 반려견 운반용 케이지 속에서는 영문을 모르는 강아지가 처량하게 짖어대고 있었다. 어머니와 10대 아들, 8살쯤 돼 보이는 딸은 이미 숨졌고, 그나마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아버지는 병사들이 돌보려 애썼지만 의식을 찾지 못했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러시아군이 키이우를 향해 남하를 계속하면서 이르핀과 호스토멜, 부차 등 키이우 서북쪽 소도시 주민들도 대거 피란길에 나섰다.
하지만 이 여정도 위험천만하기는 마찬가지라고 이들 매체는 전했다. 파괴된 다리 잔해 사이로 어떻게든 강을 건널 수는 있지만 다리에 접근하기 위해 지나야 하는 도로는 사방이 노출돼 언제 쏟아질지 모르는 러시아군의 포격을 피할 방법이 없다. 사고를 당한 일가족도 다른 피란민과 무리를 이뤄 도로를 달렸으나 포탄이 이들을 겨냥하기라도 한 듯 날아와 터졌다.
전쟁의 비극은 우크라이나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AP통신에 따르면 지난 4일 우크라이나 남부 항구도시 마리우폴의 한 병원에 젊은 부부가 생후 18개월 된 아들을 품에 안은 채 황급히 뛰어 들어왔다.
아버지는 파란색 담요로 둘러싼 아이를 꼭 끌어안고 다급하게 의사를 불렀다. 뒤따라온 어머니의 옷은 피로 얼룩져 있었다. 아버지는 아들이 러시아군이 쏜 포탄에 맞아 크게 다쳤다고 상황을 설명했다. 이에 의료진은 급히 아이의 입을 벌리고 고개를 젖혀 기도를 확보한 뒤 심폐소생술을 시도했다. 아버지는 조금이라도 힘을 보태려는 듯 곁에 서서 아들의 몸을 꼭 끌어안았다.
하지만 아버지와 의료진의 노력에도 아기는 끝내 숨을 거뒀다. 한 의료진은 죄 없는 작은 생명을 살리지 못했다는 허탈감에 빠져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그대로 병원 복도에 주저앉았다.
어머니는 아들의 시신을 끌어안고 오열했다. 아버지도 입을 손으로 틀어막고 눈물을 흘렸다. 아이를 감싸 안았던 담요에는 전쟁의 참상을 대변하듯 핏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이 같은 비극과 우크라이나인들의 목숨을 건 피란길은 언론매체와 SNS를 통해 널리 퍼지면서 전 세계적으로 분노와 슬픔을 동시에 불러일으키고 있다. 유엔난민기구(UNHCR)는 이날 피란을 간 난민 수가 150만명을 넘어섰다고 밝혔다.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은 “이러한 행위가 전쟁범죄에 해당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도 민간인을 향한 러시아의 공격이 ‘야만적’이라고 비난했다.
송태화 임송수 기자 alv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