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해진 바람이 오히려 산불 진화헬기를 꽁꽁 묶어놨다. 대기 안정으로 연기가 빠져나가지 않은 것이 돌발 변수로 작용한 것이다. 7일 중 주불을 진화할 것으로 예상했던 강원도 삼척·동해시는 오후 늦게까지 사투를 벌였다.
이날 낮 12시쯤 강원도 삼척시 원덕읍 가곡리에 헬기 엔진소리가 울려 퍼졌다. 오전 내내 이 일대를 뒤덮었던 산불 연기가 사라지면서 헬기를 이용한 진화 작전이 시작됐다. 헬기는 연기가 피어오르는 산기슭에 물을 계속해서 뿌려댔고, 산에 피어오르던 불길이 점차 줄어들었다.
산림 당국은 이날 일출과 동시에 헬기를 총동원해 불을 끄려 했다. 그러나 연기가 발목을 잡았다. 불이 나면서 발생한 연기가 퍼지지 못하고 산 주변에 머물러 시야 확보가 되지 않았다. 어디가 산이고, 하늘인지 분간하기 힘들 정도였다. 헬기를 가동할 경우 고압전선이나 송전탑에 헬기가 걸려 사고가 날 수 있고, 어디에 불이 났는지도 판단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삼척 산불 주불은 원덕읍 사곡리에 남아있다. 그러나 지형이 가파르고 절벽도 있어 접근 자체가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 헬기가 뜨지 못하자 삼척시 공무원과 산불 진화대원들은 오전 내내 발만 동동 굴렀다. 삼척시 관계자는 “바람이 약해 오전 중에 끌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연기가 야속하기만 하다”고 말했다.
강원도 강릉시 옥계면과 동해시도 오전 연기 때문에 애를 먹었다. 이날 오전 진화율이 90%에 달했다. 하지만 강한 연기에 헬기가 접근하지 못하면서 오후 내내 진화율이 90%에 머물렀다. 매캐한 연기는 산불 발생지역은 물론 동해 시가지 전체에 남았다. 황사처럼 하늘은 뿌연 연기로 덮였다. 동해에서 발생한 연기가 바람을 타고 30㎞가량 떨어진 강릉 도심까지 번지면서 강릉 시민들이 ‘산불 난 게 아니냐’며 문의했다.
대형 산불 피해가 난 강릉과 동해, 영월에선 특별재난지역으로 지정해 달라는 목소리가 솟구쳤다. 정부는 6일 경북 울진과 강원도 삼척을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했다. 동해상공회의소는 “동해·강릉도 대한민국 땅인데 동해, 강릉 지역 주민들이 입은 피해와 고통이 울진·삼척과 어떻게 다를 수 있겠느냐”며 “강릉과 동해, 영월을 특별재난지역으로 지정해 달라”고 주장했다. 최종봉 강릉시번영회장은 “같은 피해를 입었는데 강릉과 동해, 영월만 쏙 빼놓은 사실이 이해되지 않는다”며 “이들 지역 모두가 하루빨리 복구될 수 있도록 조속히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해 달라”고 말했다.
삼척·동해=서승진 기자 sjse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