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태 칼럼] 괴물 대통령? 식물 대통령?

입력 2022-03-08 04:20

20대 대선은 정치적 내전양상
최악의 진영 대결로 분노 유발
내일 투표 지지층 총결집 노려

반쪽 대통령 출현 이후가 걱정
반대편은 승복할 가능성 작아
선관위가 불복 빌미까지 제공

국정 운영도 독주·대립 발생
분열과 대결 정치로 미래 암울
승자독식 구조 바꾸는 게 과제

“○○○○가 만든 대통령을 원하느냐 국민이 만든 대통령을 원하느냐. 지금 국민의힘은 105석(실제론 현재 106석)에 불과하고 민주당은 172석이다. 대통령 5년 임기 초기에 2년1개월을 105석으로 어떻게 국정을 이끌 수 있겠느냐. 식물 대통령이 될 것이다.” “자기가 한 말을 손바닥 뒤집듯 하는 후보, 보통사람의 도덕성만도 못한 후보, 부끄러움을 모르는 후보가 아무리 좋은 공약을 쏟아낸들 그 약속은 믿을 수 없다. 덜 익은 사과는 익혀서 먹을 수 있지만 썩은 사과는 먹을 수 없다. 혹자가 말했듯이 저는 예측 불가능한 괴물 대통령보다는 차라리 식물 대통령을 선택하기로 했다.”

승자독식의 20대 대선에서 여야가 상대방인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를 바라보는 시각이다. 하나는 척결해야 할 ‘괴물’이고 다른 하나는 무기력증에 빠질 ‘식물’이다. 송영길 민주당 대표가 야권의 전격적인 단일화 직후 지방 순회 연설에서 한 말, 이낙연 캠프 공보단장으로 활동했던 정운현 전 국무총리 비서실장이 지난달 윤 후보 지지로 선회하면서 페이스북에 올린 글이다. 상대 후보가 당선된다면 폭주 기관차처럼 질주하거나 손발이 꽁꽁 묶인 채 아무것도 할 수 없어 나라가 엉망이 될 거라는 얘기다. 고로 상대편이 이겨선 결코 안 된다는 적대감을 지지층과 부동층에 심어주려는 것이다. 사생결단을 내야 하는 여야의 절박한 심정이 응축돼 있는 듯하다.

역대급 비호감 대선에 최악의 네거티브 공방으로 진영 대결은 점점 격렬해지고 있다. 지지층 결집을 위해 자극적이고 노골적인 언사로 편 가르기를 하면서 상대방에 대한 분노를 유발하고 혐오를 조장하는 게 다반사다. 정치적 내전 양상이다. 이러니 선거 막판으로 갈수록 죽기 살기로 덤벼드는 ‘아사리판’이 될 수밖에 없다. 각종 의혹에 휩싸인 후보 배우자들이 나홀로 투표를 하고 선거운동에 얼굴조차 내보이지 않는 초유의 대선이 무얼 의미하겠는가. 이미 외신은 “추문과 말싸움, 모욕으로 얼룩진 역대 최악의 선거” “한국 민주화 역사상 가장 역겨운 선거”라고 평했을 정도다. 여기에 더해 송 대표가 어제 서울 신촌 유세 중 피습을 당하는 사태까지 발생했으니 암울할 따름이다.

초박빙 접전에 양측 지지자들은 더욱 결집하는 모양새다. 4~5일 사전투표율이 역대 최고인 36.93%에 달한 것은 이를 방증한다. 하지만 높은 투표율이 어느 후보에게 유리한지는 도무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사전투표를 독려해온 양 진영은 아전인수식 해석을 하고 있다. 민주당은 야권 단일화로 인한 위기의식이 전통적 지지층을 똘똘 뭉치게 하는 역풍으로 작용했다고 주장하는 반면 국민의힘은 정권교체 열망이 뜨거운 열기로 분출됐다고 진단한다. 판세 전망도 엇갈린다. ‘역전극’ ‘오차범위 밖 우세’라며 서로 승리를 자신한다. 이는 내일 본투표에서의 지지층 총결집을 노려 여론전을 벌이는 데 불과하다.

이제는 다수가 원하지 않는 ‘반쪽 대통령’이 출현할 대선 이후가 두렵다. 누가 당선되든 상대편은 승복하지 않을 가능성이 작지 않다. 패배한 쪽은 너도나도 광장으로 뛰쳐나가 울분을 토로하며 타도 대상을 외치는 그림까지 그려진다. 더구나 어처구니없는 확진·격리자 사전투표 부실관리 참사로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불복 논란의 빌미까지 제공한 마당이다. 근소한 차이로 승패가 갈린다면 선거 불복 시비가 실제 일어날 개연성도 배제할 수 없는 것이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국정 운영 문제다. 이 후보가 당선되면 172석의 거대 의석을 앞세워 입법 폭주를 하는 것은 물론 하등의 견제를 받지 않는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려 할 게다. 2년 전 21대 총선 압승에 취해 오만과 독선에 휩싸여 독주를 해온 지금의 여권보다 더 할 수도 있겠다. 윤 후보가 선출되면 여소야대 국면에서 소모적인 극한 대립이 발생할 게 뻔하다. 야권의 협조를 필요로 하는 새 정부 조각에서부터 심각한 파열음이 날 것이다. 할 수 있는 거라곤 검찰을 동원한 ‘보복’밖에 없을지도 모르겠다. 괴물 대통령과 식물 대통령의 단적인 예다. 이 같은 분열과 대결의 정치가 가속화한다면 대한민국의 미래는 암담해진다.

대선 이후를 어떻게 넘어서느냐가 우리 모두의 과제다. 여기저기서 통합과 상생을 주문한다. 하지만 탐욕스러운 승자독식의 정치 구조를 획기적으로 바꾸지 않는 한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할 수 있다. 대선 후폭풍이 진짜 걱정된다.

박정태 수석논설위원 jtpar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