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계올림픽 배구팀에 느꼈던 애틋함을, 동계올림픽 컬링 국가대표 ‘팀킴(Team Kim)’에 다시 느꼈다. 패배를 직감하면서도 담담히 코트에 올라 몸을 사리지 않고 뛰며 팀을 격려하던 배구팀 주장 김연경, 그리고 힘든 경기 중에도 차분한 모습으로 링크 위에서 팀을 아우르고 최선을 다해 스톤을 던지며 소리치던 컬링팀 주장 김은정의 모습에서, 멋짐과 감동이 무엇인지를 새삼 느꼈다.
지도자의 부적절한 행태로 어려운 시기를 보냈던 팀킴이 베이징 동계올림픽에서 보여줬던 서로를 향한 따뜻한 격려와 배려에서, 승패를 초월한 진정한 승자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코로나19로 힘들고 대통령 선거의 혼탁함으로 지쳐버린 일상 속에서, 팀킴이 보여준 상호 신뢰의 팀워크는 감동이었다.
팀킴의 모습과는 달리 오늘의 팬데믹 세상에는 ‘팀킬(Team Kill)’이 난무한다. 팀킬이란 주로 컴퓨터 게임에서 사용되던 용어가 대중화된 것이다. 의도적 혹은 우발적으로 같은 편을 해치는 행위를 의미한다. 코로나, 대선, 우크라이나 침략전쟁 등 다사다난한 국내외 사건들 속에서 자신이 소속된 집단을 분열과 고통 파멸 속으로 몰아넣는 팀킬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다. 겉으로는 대의명분을 내세우지만 속으로는 저열한 배신과 협잡을 합리화하면서, 같은 편 동지들을 의도적으로 해치는 정치적 팀킬이 대선 과정에서 스스럼없이 벌어지고 있다. 우크라이나와 ‘문화적 언어적 정치적’으로 같은 공동체라는 주장을 하던 러시아는 이율배반적 살상과 파괴를 거침없이 저지르고, 심지어 핵무기까지 운운하고 위협하면서, 인류 파멸의 팀킬도 불사하는 침략전을 수행하고 있다.
팀킬은 이단들의 ‘최애’(가장 사랑하는) 아이템이다. 팀킬을 교사(敎唆)하는 데 이단들은 능숙하다. 즉 심각한 가정불화가 발생할 수도 있는 위험성을 아랑곳하지 않은 채, 자신들의 목적 달성을 위해 가족과의 관계를 단절하도록 부추기며 가족공동체 해체를 유도한다. 그리고 마침내 세뇌당한 이단 피해자들로 하여금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사랑하는 사람을 포기하는 팀킬을 스스로 선택하게끔 만든다.
정치적으로든 종교적으로든, 팀킬을 조장하면서 국가와 이웃, 가족을 운운하는 것은 위선이고 기만이다. 팀킬은 어떤 이유로든지 합리화될 수 없다. 그래서인지 예능 프로그램에서 불신을 부추기고, 배신을 미화하고 동료의 아픔에 박장대소하는 모습이 때로 불편하고 씁쓸할 때가 있다.
올림픽 컬링경기의 한 스톤, 한 스톤을 숨죽여 지켜보면서 패배했다는 속상함보다는 최선을 다했다는 감동을 훨씬 더 많이 느꼈다. 컬링 팀킴 선수들의 승패를 떠난 순수한 미소와 눈물에서 신뢰와 배려의 팀워크가 무엇인지를 배웠다. 팀킴 주장 김은정은 “서로서로 이해하려고 노력했던 시간이 모여서 지금은 서로 진짜 편한 사이가 된 것 같다”고 한 인터뷰에서 밝혔다.
정치적 이해관계나 이해득실을 치밀하게 계산하고 야합하며 심지어 팀킬마저도 거리낌 없이 실행에 옮기는 속물들이 득세하는 세상에서, 팀킴의 존재는 더욱 밝게 빛난다.
팀킴과 팀킬 모두 누군가의 눈물을 흘리게 한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마지막 경기를 마친 후 팀킴 선수들도 울고, 감독도 울고 기자들도 울었으며, 그것을 지켜보는 우리의 눈가도 애틋한 감동으로 촉촉해졌다. 하지만 팀킬은 배신과 불신 속에서 타인으로 하여금 고통의 눈물을 흘리도록 만든다.
초대교회로부터 기독교 신앙공동체는 팀킴의 모습과 비슷했다. 함께 믿음을 지키고 생사고락을 나누며 하나님과 이웃의 사랑을 받았다.(행 2:44~47) 팀킬이 거리낌 없이 자행되는 분열과 역병의 세상 속에서, 팀킴의 모습이 아름답게 도드라져 보이는 충분한 이유가 있다.
탁지일 (부산장신대 교수·현대종교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