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쇼(No Show)는 예약을 하고 나서 약속을 지키지 않는 행위다. 흔히 음식점 공연장 여행업에서의 예약 부도를 일컫는데 개인, 조직, 사회의 신뢰를 무너뜨리는 단초로 작용하기도 한다. 공정거래위원회가 2016년 만든 노쇼 근절 캠페인에서 방송인 백종원이 “560만 자영업자들을 두려움에 떨게 하고 있다”고 말할 정도로 폐해가 심하다.
정작 전 국민에게 노쇼 경각심을 불러일으킨 건 축구 스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였다. 2019년 7월 26일 프로축구 K리그 올스타와 이탈리아 명문 유벤투스 간 경기에 6만여 관중들이 경기장을 가득 메웠다. 호날두가 뛰는 경기를 직접 본다는 기대감이 컸다. 하지만 호날두는 최소 45분을 뛴다는 계약서상 약속도 무시한 채 출전하지 않았다. 그의 노쇼에 분노한 관중 일부는 집단 소송에 참여했다. ‘우리형’으로 불린 호날두의 별칭은 ‘날강두’로 바뀌었다.
몰염치로 대변되는 노쇼가 선한 영향력을 선보이기도 한 것은 의외다. 2020년 6월 미국의 BTS 팬들은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유세 현장 티켓을 대량 구매한 뒤 가지 않았다. 그의 인종차별 행위를 비판하기 위함이다. 텅빈 객석을 본 트럼프는 분통을 터뜨렸다. 일부 여성들은 2019년 영화 ‘걸캅스’를 예약한 뒤 영화관을 찾지 않는 ‘영혼 보내기’ 운동을 펼쳤다. 상대적으로 관심이 적은 여성 영화에 대한 새로운 후원 방식이다. 이런 노쇼가 상대 진영이나 다른 영화팬들에게는 민폐였기에 절반의 성공에 그쳤다는 지적도 없지 않았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노쇼가 모든 이를 행복하게 해 줄 수도 있다는 점을 알게 했다. 숙박공유서비스 에어비앤비 이용자들이 전쟁으로 갈 수 없는 우크라이나의 숙소들을 무더기로 예약했다. 이달 2~3일에만 예약이 6만1000건을 넘었다. 배우 임시완도 4인실을 한 달간 예약했다. 전쟁에 지친 우크라이나 국민에게 숙박비를 지원하는 신박한 발상이다. 착한 노쇼의 탄생이다. 전쟁이 끝난 뒤 우크라이나에서 숙소 이용객들과 집주인들이 즐겁게 재회하는 모습을 상상해본다.
고세욱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