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슬라 최고경영자(CEO) 일론 머스크가 운영하는 회사 중 ‘뉴럴링크’라는 곳이 있다. 인공지능의 성능이 인간을 위협할 단계에 이르게 되면 거기에 맞설 수 있도록 인간의 지적 능력을 높이겠다는 것이 이 회사의 비전이다. 두뇌와 컴퓨터를 연결하면 생각만으로 기계를 조종할 수 있고, 외국어도 순식간에 배울 수 있단다. 이런 도전은 과연 성공으로 이어질 수 있을까. 인간의 두뇌와 컴퓨터를 연결하는 기술은 현재 어떤 수준까지 와 있을까.
BCI(뇌-컴퓨터 연결)는 사람의 뇌와 컴퓨터를 연결해 다양한 일을 하는 기술의 총칭이다. 뉴럴링크의 기술도 BCI의 한 종류다. 다만 BCI와 비슷한 개념이 여러 가지 혼용돼 쓰이고 있어 구분이 필요하다.
가장 넓은 범위의 이름은 아마도 HMI(인간-기계 연결)일 것이다. 인체 어느 부위든 기계와 연결할 수만 있다면 HMI로 볼 수 있다. 즉 고성능 의족이나 의수도 HMI에 해당한다. 또 사람과 기계를 연결할 때 많은 경우 컴퓨터가 필요하므로 HCI(인간-컴퓨터 연결)라는 말을 쓰기도 하는데 가상현실 디스플레이 등을 의미하는 경우도 많아 문맥에 따라 구분할 필요가 있다. 즉 넓은 의미에선 BCI 역시 HMI의 일부다. BMI(뇌-기계 연결)라는 말도 있는데, 요즘은 BCI라는 단어로 통일해 쓰이는 분위기다. 기계를 움직이려면 어차피 컴퓨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영국 BBC 등에 따르면 2월 초 이탈리아인 마켈 로카티씨는 오토바이 사고로 움직이지 못하는 하반신에 척수를 자극하는 전극 이식 수술을 받아 두 다리로 걷는 데 성공해 화제가 됐다. 이 경우는 두뇌와 연결한 것이 아니라 척수 신경과 연결한 것이다. 따라서 BCI가 아니라 HMI 혹은 HCI가 옳은 표현이 된다.
그렇다면 BCI 기술은 어떤 점이 다를까. 이 기술이 완성 단계에 이르면 뇌와 컴퓨터를 직접 연결하므로 응용 범위가 극적으로 넓어진다. 생각만으로 로봇을 조종하거나 게임을 할 수도 있고, 외부에서 정보를 두뇌 속에 집어넣을 수도 있다. 친구와 감동이나 슬픔 등의 감정, 뜨겁거나 차가운 감각 등을 공유할 수도 있다.
BCI 기술이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은 건 2014년 6월 브라질월드컵 개막식 때였다. 당시 코린치앙스경기장 한켠에서 각종 기계 장치를 온몸에 주렁주렁 몸에 단 젊은 남성이 오른발을 앞으로 살짝 뻗어 월드컵 공인구 ‘브라주카’를 툭 건드렸다. 공은 2m가량 굴러갔고, 그 남성은 오른팔을 번쩍 들어올리며 환성을 질렀다. 브라질월드컵의 시작을 알리는 ‘시축’에 성공한 것이다.
이날 시축을 한 사람은 허리 아래 감각이 조금도 없는 ‘하체 마비 환자’였다. 웨어러블 로봇을 입고 EEG(뇌파측정장치)를 내장한 헬멧을 통해 생각만으로 다리를 움직인 것이다. 인간의 뇌를 직접 컴퓨터 시스템과 연결한 대표적인 BCI 성공 사례다. 브라질월드컵 시축을 담당한 연구책임자는 ‘미겔 니콜레리스’ 미국 듀크대 교수로, 이 분야 세계적 석학으로 알려져 있다.
국내에선 김래현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책임연구원팀이 BCI 기술을 이용한 하체 마비 환자용 외골격 로봇을 개발하고 있다. 브라질월드컵 당시에 비해 로봇이 훨씬 경량화됐으며 성능도 월등히 높아졌다. 압력 센서가 붙은 전자목발을 보조적으로 사용하면 환자 혼자 일어나거나 앉고, 어느 정도 보행도 가능하다. 이 기술은 지난 2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개최된 세계 최대 첨단기술전시회인 ‘CES2020’에서 소개돼 호평을 받았다.
프랑스 연구팀이 2019년 10월 발표한 성과 역시 주목할 만하다. ‘알림 루이 베나비드’ 프랑스 그르노블대 생물물리학과 명예교수팀은 전신 마비 환자용 웨어러블 로봇을 개발했는데 팔과 다리를 모두 생각만으로 제어할 수 있다. ‘티보’라는 이름의 청년은 척수를 다쳐 사지 마비 판정을 받았는데 이 기술을 이용해 2017년부터 2019년까지 진행된 실험에서 로봇을 입고 두 손과 팔 관절을 움직이고, 축구 경기장을 한 바퀴 걷는 데 성공했다. 이 밖에 BCI 실험 사례는 적지 않다. 뇌파를 해석해 사람이 생각만으로 로봇 팔을 움직여 물건을 집어 들거나, 뇌에서 읽은 신호를 다시 운동신경 자극으로 변환해 마비된 팔을 움직이는 일 등이 실험실 단계에서 이뤄지고 있다.
뇌와 컴퓨터를 연결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 두뇌로부터 신호를 ‘수신’해야 한다. fMRI(기능성 자기공명영상)나 적외선을 이용해 뇌의 혈류를 확인하는 방법, 뇌의 자기장을 읽어내는 뇌자도 측정 방법 등 다양한 방식이 쓰인다. 하지만 역시 뇌파를 직접 읽어내는 방식이 인기가 있다. 인기가 있는 것이 병원에서 사용하는 EEG(뇌전도) 방식이다. 사람의 뇌 신경에 뇌파가 흐를 때 생겨나는 미세한 전기 잡음(전파)을 읽어내 해석하는 원리다. 브라질월드컵 시축 때 이 방법을 사용했다. 이 밖에 두개골과 뇌 사이에 전극을 넣어 뇌를 직접 다치지 않고도 뇌파를 더 읽어내는 방법도 고안됐는데 이때부터 수술이 필요하다. 프랑스 청년 티보가 이 방식으로 움직이는 데 성공했다.
아예 두뇌 표면에 직접 전극을 꽂는 방법도 있다. 뉴럴링크 연구진이 채용한 방식이다. 이 회사는 2019년 7월에 뇌에 이식할 수 있는 폴리머 소재 전극과 초소형 칩 N1으로 구성된 인터페이스 장치를 공개했는데 모두 1024개의 전극이 연결되어 있어 뇌에서 상세한 신호를 받을 수 있다. 뉴럴링크 팀은 이 기술을 이용해 원숭이가 손을 사용하지 않고 컴퓨터 게임을 하게 만드는 등의 성과를 냈다고 자랑한 바 있다. 평가는 사람마다 다르지만 미겔 니콜레리스 교수 등 전문가들은 혹평하는 경우가 많다. 그들이 현재 공개한 기술들은 과거에 이미 개발된 것과 큰 차이가 없는 경우가 많으며, 또 성공할 거라고 제시하는 몇몇 기술은 현재 과학기술 수준에서 실용화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런 지적은 타당해 보인다. 외국어를 다운로드해 몇 분 사이에 익힐 수 있게 해주거나, 감각을 공유하는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려면 외부 신호를 뇌 속으로 집어넣는 입력 기술이 필요한데, 현재까지 이렇게 할 방법은 아직 밝혀진 게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그 같은 영역은 앞으로 뇌과학이 더 발전해 인간 뇌신경과 뇌파의 비밀이 모두 밝혀진 이후에야 가늠해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과학저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