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 공권력 오버킬 책임 물어야

입력 2022-03-08 04:06

프리 크라임(Pre Crime).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의 범죄예방국이다. 미래 살인범을 미리 제거한다고 둘러댔지만 시스템 결함으로 무고한 시민들을 벌줬다. 20년 후 넷플릭스 드라마 ‘지옥’의 새진리회 의장단은 갓 태어난 아기까지도 죄를 범했다고 몰아붙였다. 탐욕과 무능이 그들의 민낯이었다. 차기 대통령은 하필 지금 한국에서 이런 작품이 나왔다는 점을 곱씹어주기 바란다.

귀무가설이 참인데 이를 기각하는 실책을 ‘제1종 오류’라 부른다. 예컨대 ‘시민=무죄’가 진실인데도 유죄로 모는 식이다. 이런 오류에 의한 이른바 ‘공권력 오버킬(과잉억제와 부작위)’이 심각하다. 법원이 다행히도 제동을 걸어준 무차별 방역패스 정책이 대표적이다. 해양수산부 직원 피살 직후 자진 월북이라 발표하고 외면해 버린 것도 오버킬 개연성이 짙다. 오버킬은 직접적 피해자의 좌절을 훨씬 넘어 국민의 경제 의지까지 억압한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의 무분별한 통신자료 조회가 알려졌다. 피의자와 무관한 외신 기자, 학회 교수와 그들 가족까지 포함됐다. SNS 단체방에 있었다는 이유만으로도 조회했다. 기타 상식적 설명이 힘든 대상들이 허다했다. 사생활과 통신의 헌법적 자유까지 언급할 필요도 없다. 선량한 국민을 공범 피의자로 몰아붙인 수사기관의 습관성 오버킬이었다.

구글 투명성 보고서로 드러난 한국 정부의 콘텐츠 삭제 요청도 놀라웠다. 2020년 기준으로 보면 5만4000건이 넘어 압도적 세계 1위였다. 미국의 5배를 넘었고 일본 독일 영국 프랑스의 수십 배였다. 불량 콘텐츠를 차단했다고 항변할 것이다. 그러나 3분의 1은 기각됐다 하니 남발 개연성이 크다. 지난해 트위터 게시물 삭제 요청 건수도 세계 5위였다. 사고 후에 나오는 일벌백계책도 마찬가지다. 사고는 항상 일어난다. 교통사고만 해도 차로 변경, 졸음, 신호 위반, 음주, 보복 운전 등 원인과 비난 가능성이 천양지차다. 그에 비례해서 민사·행정·형사적 책임을 물어야 한다. 그래서 중대재해처벌법은 극명한 오버킬 사례가 될 수 있다. 귀책을 따지는 의무 규정이 두리뭉실하다. 그런데도 의무 불이행에 사망자 1명 이상 발생하면 1년 ‘이상’의 징역을 규정했다. 엄벌 의지의 표명이라 하나 이건 아니다.

공권력 오버킬 원인은 복합적이지만 왜곡된 관료 유인이 크게 한몫한다. 문제가 터지면 직면할 실패 책임을 피하려고 애쓴다. 시쳇말로 안전빵 유인이 도드라져 툭하면 어깃장을 놓는다. 설사 찔끔 움직이더라도 책임은 죄다 남에게 전가하려 한다. 즉 웬만하면 귀무가설을 기각하는 꼴이므로 제1종 오류는 커질 수밖에 없다. 그 결과가 전방위 오버킬이다. 이제 문제가 불거져도 “내 소임은 했다”는 항변을 들이댈 수 있다. 종종 보직 행정을 볼 때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던 경고가 ‘교육부 감사 리스크’였다. 입시, 학사, 재정 등 모든 면에서 간섭이 지나쳤다. 상당수는 관료의 책임회피와 편의도모의 산물로 보였다. 이들의 혁파 없이 대학들의 선진화는 요원하다.

통제만능주의식 오버킬은 국가 창의력을 좀먹는다. 경제 대통령이 되겠다면 취임 직후 이 안전빵 관료주의부터 쇄신해야 한다. 혁신 역량을 북돋고, 위험 감수를 허용하고, 오버킬에 되레 책임을 묻는 거버넌스가 절실하다. 한국경제학회 회원들은 최근 설문에서 우리 경제의 성장 하락세를 반등시킬 ‘가장 효과적 정책’으로 (7가지 중) ‘규제 개혁’과 ‘재산권 보장과 교육 개혁’을 제일 많이 꼽았다. 답변자의 총 60%에 달했다. 이런 개혁을 위해서도 안전빵 문화는 일소돼야 한다. 그게 방치되는 한 자신의 보호막이 돼줄 오버킬 규제들을 없애자는데 과연 꿈쩍이라도 할까.

김일중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