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중반 이래 한국의 경제정책 수립과 집행에 있어 최대 결점은 모든 정책이 중장기 경제발전의 관점이 결여된 상태로 수립·집행돼 왔다는 사실이다. 한국은 1962년부터 4차의 경제(사회)개발 5개년계획과 1982년부터 3차의 경제사회발전 5개년계획을 통해 각각 중진국권으로의 도약과 중진국으로서의 착실한 성장에 성공했다. 그러나 1993년 문민정부 출범에 맞춰 이전의 5개년계획을 대체한 ‘신경제 5개년계획(1993∼97)’이 1994년 후반에 실종됐다. 이후 2014년에 ‘창조경제 3개년계획’이 잠깐 등장했으나 다시 금방 실종되는 등 지난 4반세기 이상의 기간에 모든 경제정책이 중장기 경제발전 계획의 틀이 없이 수립·집행돼 왔다.
경제정책을 중장기 경제발전 계획의 틀 없이 개별적으로 수립·집행하는 것은 매우 바람직하지 못한 일이다. 이는 새로운 정책이 기존 정책들에 미칠 영향, 정책의 직접적 대상이 아닌 분야들에 미칠 영향, 그리고 중장기적으로 경제에 미칠 영향 등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음으로써 정책의 효과가 미미하게 되거나 때로는 역효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1990년대 중반 이후 한국의 경제정책들은 종합적인 중장기 경제발전 계획의 틀 안에서 운영되지 못하고 세계화, 녹색경제, 창조경제, 소득주도성장 등의 비전만 제시하면서 개별적으로 운영돼 왔다. 이 때문에 오늘날 한국경제가 저성장 기조, 구조적 취약성, 그리고 격차 불만 팽배 등의 난관에 봉착하게 됐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많은 논자는 중장기 경제발전 계획의 틀 안에서 경제정책들을 운영하는 것은 계획적 경제개발이 절대적으로 요구되는 후진국의 단계에서나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중진국에서 선진국으로의 도약 역시 중장기 경제발전 계획 없이 이뤄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중진국에서 선진국으로 도약하는 것은 후진국에서 중진국으로 도약하는 것에 못지않게 범국가적 비상한 노력이 요구되는 일이다. 그런 노력은 중장기 경제발전 계획이 수립되고 모든 경제정책이 중장기 경제발전 계획의 틀 안에서 수립·추진될 때에만 가능하다.
1960년대 초 중진국권에 있던 26개국 중 19개국이 오늘날까지도 중진국권에 계속 정체돼 있고 4개국이 후진국권으로 다시 추락한 것은 중진국권 진입 후 중장기 경제발전 계획의 수립·집행 등 지속적인 발전을 위한 체계적인 노력을 계속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모든 중진국이 범하고 있는 이런 어리석음을 한국이 재연해서는 안 된다.
때로는 경제정책의 계획적 운영과 계획경제의 운영을 혼동해 전자를 반대하는 경우도 없지 않다. 그러나 양자는 본질적으로 다른 일이다. 전자는 모든 경제정책의 중장기적 효과를 예측하고 정책 상호 간의 영향을 고려해 정책을 체계적으로 수립·집행함으로써 시장경제의 효율성을 극대화하고자 하는 것이다. 반면에 후자는 시장경제의 작용을 억제하고 모든 경제 활동을 정부의 계획하에 통제해 나가고자 하는 것이다. 후자의 경우에는 경제정책의 효과가 중장기적으로는 제약될 수밖에 없으며, 지속적으로 경제를 성장시키는 것이 불가능하게 된다.
9일 대통령선거 직후에 당선자가 구성할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는 정부의 각 경제 부처 과장급 20여명으로 소위원회를 구성하고 저명한 학계 인사들로 자문위원회를 구성해 경제 체질의 혁신, 경제 구조의 혁신, 그리고 분배 체제의 혁신 등을 골자로 하는 ‘한국경제 혁신 10개년계획(2022~2031)’을 수립해야 한다. 그리해서 새 정부가 출범과 동시에 집행해 가게 만듦으로써 모든 경제정책의 계획적 운영을 통해 새 정부 임기 중에 한국경제의 선진화 기초를 확립해야 할 것이다.
박재윤 서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