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가뭄·강풍·소나무숲·방화… 겹친 악조건에 피해 컸다

입력 2022-03-07 04:07
산림청 소속 산불재난 특수진화대원이 6일 강원 강릉시 옥계면 남양리에서 진화장비로 산불을 끄고 있다. 이곳은 정선면과 맞닿는 곳으로, 소방 당국은 백복령을 넘어 산불이 넘어가는 것을 막기 위해 총력을 다하고 있다. 강릉=최현규 기자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가뭄에 강풍까지 동반한 산불은 울창한 산림을 한순간 잿더미로 만들었다. 매년 봄철, 유독 경북과 강원 등 동해안 지역에 발생한 산불은 대형으로 이어진다. 일단 발생하면 진화하는데 수일이 걸리는 것은 기본이고 막대한 산림 피해까지 동반한다.

산림 및 소방 당국은 이번 겨울은 특히 평년에 비해 강수량이 현저히 적고 기온은 높아 산림이 극도로 건조해진 탓에 봄철 대형 산불 가능성을 한층 높였다고 밝혔다. 특히 동해안 지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한 이번 산불은 50년 만의 겨울 가뭄, 초속 20m의 강풍과 불에 약한 소나무 숲이 맞물리면서 피해면적이 크게 넓어졌다. 여기에 주민의 방화 범죄까지 더해졌다.

건조한 대지에 강풍까지 동반한 기후는 대형 산불이 발생할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이다. 기상청 관계자는 “최근 3개월 전국 평균 강수량은 13.3㎜로 평년의 14.6%에 불과한 상태로 50년 만의 가뭄”이라고 말했다. 울진 산불이 발생한 4일에는 동해안 일대에는 강풍 경보까지 발령됐다. 초속 20m의 강풍이 밤낮없이 불어 닥쳤다.

산불은 강풍과 맞물려 진화 작업에 어려움을 더했다. 이병두 국립산림과학원 과장은 6일 “가장 나쁜 환경이 건조 특보와 강풍 특보가 한 지역에 동시에 내려진 경우다. 이번 울진 산불도 건조 특보와 강풍 특보가 동시에 내려졌다”며 “사소한 불씨에도 산불이 날 수 있고 빠르게 확산된다. 진화하는 데도 지금이 최악의 조건”이라고 말했다.

동해안 지역이 불에 약한 소나무가 많아 산불에 취약한 구조라는 점도 한몫한다. 소나무는 겨울이나 봄철에 다른 활엽수와는 달리 나무 윗부분에 잎이 존재한다. 즉 탈 수 있는 연료 물질이 많다는 뜻이다. 소나무의 송진 성분 역시 기름 성분으로 화력을 가속화한다. 이 기름 성분에 불이 붙게 되면 열에너지도 더 많이 나오고 열에너지는 더 오랫동안 지속한다. 경북 내륙과 동해안 지역엔 소나무가 많아 한번 불이 붙으면 그만큼 진화가 어렵다.

공중에서 진화하는 소방 헬기가 큰 역할을 하지만 동시다발로 산불이 발생하면 한 곳에 집중하지 못하고 대응력이 약화할 수밖에 없다.

여기에 산불 원인이 어처구니없게도 토치 방화와 담뱃불 실화 등 인재(人災)일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산불 범죄 관리체계의 근본적 전환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강릉경찰서는 강릉 옥계에서 토치로 방화한 A씨(60)를 현주건조물방화, 산림보호법 위반 등 혐의로 이날 구속했다. 경찰은 지난 5일 새벽 A씨를 현행범으로 체포했다. A씨는 “주민들이 나를 무시해 불을 질렀다”고 말했다.

선거가 있는 짝수 해에 유독 대형 산불이 발생하는 징크스에도 관심이 쏠린다. 15대 총선이 있던 1996년 4월 발생한 강원 고성 산불은 3762㏊를 잿더미로 만들었다. 16대 총선이 있던 2000년에도 고성 삼척, 경북 울진에 초대형 산불이 발생해 백두대간 2만3913㏊가 초토화됐다. 여의도의 80배나 되는 산림이 잿더미가 됐다. 21대 총선이 있던 2020년 4월 안동 산불은 산림 1만944㏊와 건물 14개 동을 태웠다. 대선과 지방선거가 있는 올해 경북도 내에선 벌써 3건의 대형 산불이 발생해 1만5000여㏊의 산림이 불탔다.

울진=김재산 기자 jskimkb@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