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설교] 사람에게 보이려고

입력 2022-03-08 03:07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은 구제와 기도, 금식의 세 가지 종교 의무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이 모습은 오늘날에도 그리스도교의 대표적 종교 행위이기도 합니다. 마태복음 6장에는 여기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침이 기록돼 있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은 당시 종교지도자들이 보여준 행동과 상당히 다른 내용이어서 충격이기도 하고 도전이기도 합니다. 구제 기도 금식의 세 가지에는 하나님의 마음이 깃들어 있는 유익한 종교 행위 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하나님과 상관없을 수 있음을 예수께서 지적하셨습니다.

세 가지를 말씀하실 때 공통으로 “외식하는 자와 같이 하지 말라”고 하십니다.(5절) 구제를 할 때는 외식하는 자처럼 나팔을 불지 말라(2절) 기도할 때에 외식하는 자와 같이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 하지 말라(5절) 금식할 때에 외식하는 자들과 같이 슬픈 기색을 보이지 말라(16절)고 나옵니다.

공통된 말씀은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입니다.(4절) 구제나 기도나 금식은 사람에게 보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해야 하고, 그러면 은밀한 중에 보시는 하나님이 갚아주신다는 것입니다. 사람에게 보이려고 한다는 것은 곧 사람에게 인정받으려는 목적을 가지고 하는 것이 됩니다. 이렇게 사람을 의식하고 하는 행동은 항상 위선의 위험성에 빠지게 됩니다.

선행을 하면서 자랑하지 않고, 사람들의 인정이나 보상을 바라지 않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사실 우리가 하고자 하는 거의 모든 것들이 사람들의 인정과 관련돼 있습니다. 솔직히 그 재미가 없다면 무슨 재미로 성취감을 느끼며 높은 자리, 좋은 자리에 오르려고 애쓰겠습니까. 교회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이만큼 했으니 이 정도 보상은 따라와야 하지 않느냐고 합니다. 그래서 나팔을 붑니다. 사람들에게서 상을 받는 것을 명분 삼아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합니다. 그것은 하나님 앞에 보이려고 하는 것이 아닌, 사람에게 보이려고 하는 것입니다. 곧 외식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 가운데 참 많은 신앙적 행위들이 있습니다. 그 모든 것들이 처음에는 하나님께 집중하기 위해 만들어졌을 것입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어느새 본래 의도는 사라지고 그 행위 자체를 반복하는 것이 마치 신앙심을 증명하는 것처럼 여겨지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사람의 눈을 의식하면 거짓과 과장이 개입될 수 있습니다. 진정으로 상대방을 위하고 존중하지 않는 선행은 교만한 마음을 갖게 합니다. 금식의 경우만 해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금식은 내 이웃에 대해 사랑을 품으며 하나님의 의를 행하는 올바른 인격으로부터 나와야 합니다.(사 58:6~9) 참다운 경건 행위는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을 온전히 바라고 이 땅에서 이웃과 더불어 사랑을 나누며 살아가는 그 모습에서부터 출발합니다.

사순절 기간입니다. 많은 성도가 이 기간에 나름 경건 생활 수칙을 정해 지킵니다. 이 경우에도 오늘 본문의 말씀이 가리키는 방향을 잘 따라야 합니다. 자칫 자신의 외적 경건의 모습을 다른 사람과 비교하여 우월이나 열등의 생각을 가지게 되면, 이는 곧 사람에게 보이려고 하는 경건의 모습이 되고 맙니다. 비교의식에서가 아니라 자신의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것을 진정성을 담아 하나님 앞에서 드러내면 은밀한 중에 보시는 하나님이 갚아 주십니다. 하나님 앞에서 진실한 마음을 가진 진정한 경건의 모습이 우리 모두에게서 나타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리종빈 광주벧엘교회 목사

◇리종빈 목사는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 소속 광주벧엘교회를 담임하며 장로회신학대 이사장으로도 섬기고 있습니다. 이 설교문은 ‘2022 예배와 강단’에 수록된 글의 일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