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포커스] 21세기 일본이 한국에 주는 교훈

입력 2022-03-07 04:02

최근 일본 미디어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제도피로’ ‘열화(劣化)’ 등과 같이 정체나 쇠퇴를 의미하는 단어들이다. 일본인들에게 현실을 직시하고 미래를 위해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의도에서 사용하고 있는 것이겠지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제도피로는 20세기 일본의 성장과 안정·풍요를 지탱해 왔던 다양한 조직이나 제도, 그것이 공적 부문이든 민간 부문이든 모든 부문에서 피로 현상이 발생하고 있고 그 결과로 인한 부작용이 일본 사회 전반에 확산되고 있다는 의미에서 사용되고 있다. 가까운 예로 코로나19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문제점이 부상했는데, 그것은 구태의연한 일본의 시스템이나 제도가 원인이라는 지적을 들 수 있다.

열화란 성능이나 품질 등이 이전보다 저하했다는 의미이며 주로 정치의 열화, 관료의 열화 등의 표현에 사용되고 있다. 아베 정권기부터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다. 역사인식이 편향되고, 미래에 대한 구상력이 부족하며, 포퓰리즘적 정책을 선호하고, 국제적 시야마저 부족한 정치 리더로 인해 일본 정치의 질이 저하되고 있다는 비판이다. 또한 아베 정권기 이후 총리관저가 관료제를 통제하게 되면서 관료들의 자율성이 저하했을 뿐만 아니라 관료들이 정치권력에 촌탁(忖度)하기 위해 공문서를 개찬(改竄)하거나 증거를 위조하기까지 하는 타락 현상이 현저하게 증가하고 있다는 지적이 많아졌다. 20세기 일본에서는 사적 이익을 추구하는 정치가에 비해 관료는 국익에 대한 높은 사명감을 가지고 활동한다는 평가가 주류였으나, 21세기에 들어오면서 사명감이 희박해지고 정치의 하청기관으로 전락했다는 평가가 이어지고 있다.

제도피로, 열화가 심화되고 있다는 21세기 일본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울 것인가. 첫째, 국가든 기업이든 기존의 성공 관행이나 틀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성공 관행은 국가나 기업을 자만에 빠지게 하기 때문이다. 한국인에게 있어 20세기 일본은 잔혹한 식민지 지배와 군국주의에 대한 기억이 살아 있었기 때문에 배제와 견제의 대상이었지만, 경제 발전과 기업 성장을 위한 벤치마킹의 대상이기도 했다. 어떤 의미에서 일본은 우리의 정면교사였던 것이다. 그런 일본이 21세기 들어와 제도피로, 열화가 심화되고 있다고 한다.

물론 아직 일본은 제3의 경제 대국이다. 그럼에도 현재의 일본에 대해 경각심을 일으키는 언론, 여론이 존재한다는 것은 일본이 아직 건강하다는 의미다. 이런 일본을 우리는 인정하면서도 우리가 제도피로나 열화라는 상황에 처하지 않기 위해 일본을 반면교사로 삼을 필요가 있지 않을까. 일본이 과거의 성공에 취해 시대적 변화에 대응하지 못한 결과가 지금의 모습이라면 그 원인이 무엇인지 다양한 측면에서 종합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둘째, 국가든 기업이든 권력이 집중되면 다양한 문제가 발생한다는 점이다. 총리관저로의 권한 집중과 간부 관료의 인사권 장악으로 관료제가 위축됐을 뿐만 아니라 관료의 열화로 이어졌다. 어느 조직이든 예산이나 인사, 정보가 집중하는 권력 중추에 대해서는 항상 체크와 감시가 필요하다. 그것이 국가권력인 경우에는 더욱 필요하다. 국회 특히 야당의 체크 기능, 미디어의 체크 역할이 중요한 이유다. 아베 신조, 스가 요시히데, 기시다 후미오 총리에 이르기까지 권력이 총리관저에 집중돼 국회와 내각, 자민당과 관저, 관료기구와 관저 사이에 ‘견제와 균형’ 관계가 붕괴했다. 미디어와 유권자의 감시도 부족했다. 그것이 일본 정치의 열화로 이어졌다. 오는 9일 대통령선거를 앞둔 한국이 일본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하는 이유다.

이상훈 한국외대 융합일본지역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