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만성 통증 질환과 그 삶을 다룬 책 ‘천장의 무늬’에서 유독 강조한 것이 있다. 그것은 온라인상에서의 만남, 요즘 말로 하면 비대면 대면의 중요성이다. 매일 누워 지내는 동안 내 삶의 공간과 관계가 재편됐고 당연하게도 매우 외로워졌다. 아픈 것도 서러운데 외로우니 더 서러웠다. 세상과의 분리 불안을 해결하기 위해 인터넷에 매우 자주 접속했다.
요즘은 아는 사람을 넘어 연예인이나 정치인, 유명 예술가 그리고 그 외 모르는 사람의 사생활처럼 보이는 라이프스타일을 엿볼 수 있다. 나는 가끔 아무런 접점도 없는, 생판 모르는 사람의 SNS를 통해 그 사람의 반려견과 연애 대상, 직업 혹은 작업 등을 관찰한다. 그 행위는 종종 관음증적으로 느껴지며 그것이 나의 ‘길티 플레저(guilty pleasure)’인지 ‘길티’인지 ‘플레저’인지 다소 헷갈린다.
컴퓨터 앞에 앉아 대량의 게시물을 감상하며 자문한다. ‘나 혹시, 인터넷 중독?’ 그런데 요즘은 인터넷 공간에 얼마나 머물러야 중독이라 부를 수 있을까? 기술의 발전으로 인터넷 평균 체류 시간은 분명 늘고 있고 코로나19로 더욱 늘었다. TV는 비교적 기능이 단순해서 바보상자라는 혐의를 얻었지만, 컴퓨터처럼 기능이 다양하고 놀이와 노동, 학업을 동시에 할 수 있는 기계는 쉽게 단죄하기가 어려워 보인다.
말 없는 소통을 넘어 목소리를 주고받는 소통이 하고 싶었다. 코로나로 온라인 모임이 대풍년을 이루고 있다. 아쉬운 점이 많지만 적어도 외출이 쉽지 않은 내겐 반가운 현상이다. 온라인으로 많은 것을 누린다. 미술 전공자들이 이끄는 만화 동아리에 가입했고 영화 속 좀비 연대기에 대해 강의를 들었으며 동지들과 공포 소설을 읽고 가상 캐스팅을 벌였다. 아픈 몸을 가졌기에 역설적으로 역병 이후를 만끽하고 있다. 오늘도 타인의 하의를 궁금해하며 컴퓨터 앞에 앉는다.
이다울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