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랜만에
거울 앞에 서니
마음은 아직
열일곱 살인데
얼굴엔 주름 가득한
70대의 한 수녀가 서 있네
머리를 빗질하다 보니
평생 무거운 수건 속에
감추어져 살아온
검은 머리카락도
하얗게 변해서
떨어지며 하는 말
이젠 정말
사랑할 시간이
많지 않아요
기도할 시간이
길지 않아요
나도 이미
알고 있다고
깨우쳐주어 고맙다고
웃으며 대답한다
오늘도 이렇게
기쁘게 살아 있다고
창밖에는 새들이
명랑하게
노래를 하고!
나를 부르고!
-이해인 수녀 시 편지 ‘꽃잎 한 장처럼’ 중
올해 77세가 된 이해인 수녀가 지난 2년여간 쓴 시와 산문, 일기들을 묶은 책이 나왔다. 노년에 투병까지 겹쳐서 그런지 새 글에는 죽음이라는 단어가 많이 나온다. 특히 나이듦과 병, 죽음에 대한 생각을 들려주는 신작 시들은 솔직하고 단정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