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에 대한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스위프트) 배제는 이번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경제 제재의 핵심으로 꼽힌다. 스위프트에서 배제된다는 것은 러시아 기업과 개인의 수출입 대금 결제, 해외 대출·투자가 모두 막힌다는 뜻과 다름없다. 이번 제재가 ‘핵폭탄급’으로 불리는 이유다. 그러나 달러의 힘을 바탕으로 한 이런 금융제재는 양날의 칼이다. 미국발(發) 금융제재가 러시아를 굴복시킬 핵폭탄급 위력을 지닌 것은 맞지만 한편에서는 금융제재 남용이 달러 패권 약화를 불러올 수 있다는 분석이다. 이미 ‘금융 고립’ 위기에 빠진 러시아가 중국과 함께 별도의 국제 결제망을 강화하려고 나설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9·11 테러 이후 20년 이어진 금융제재
스위프트는 쉽게 말해 금융기관이 국경을 넘어 안전하게 서로 통신할 수 있도록 하는 기술 인프라다. 달러화 기반으로 현재 200개국 1만1500여개 기업이 가입해 있다. 러시아 정부는 2014년 스위프트에서 러시아를 제외할 시 국내총생산(GDP)의 최대 5%가 손실될 수 있다고 전망한 바 있다.
이번뿐 아니라 특정 국가에 대한 미국의 경제 제재, 특히 그중에서도 금융제재는 지난 20년간 꾸준히 증가했다. 미국은 1950년대부터 제재를 외교정책의 한 수단으로 사용해 왔는데, 지금은 금융제재가 외교정책의 핵심적 도구로 자리 잡았다.
금융제재는 몇 차례 사건을 계기로 진화해 왔다. 첫 번째는 2001년 9·11 사태다. 미국은 당시 애국법을 제정해 테러조직과 연루된 기관을 ‘자금세탁 우려’ 기관으로 지정해 제재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했다. 후안 자라테 전 재무부 테러·금융담당 차관보는 2013년 집필한 저서 ‘재무부의 전쟁’에서 “이때 금융전쟁의 청사진을 만들었다”고 평했다.
그다음에는 북한과 이란이 금융제재의 표적이 됐다. 미국은 2010년부터 이들의 핵 개발을 저지하기 위해 1차 제재에서 나아가 ‘2차 제재’도 본격 사용했다. 2차 제재란 미국이 아닌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도 제재를 적용하는 것을 말한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당선도 중요한 분기점이다. 트럼프는 금융제재를 가장 적극적으로 동원했다. 미국 법률사무소 보고서는 트럼프 정권이 외교수단으로서 제재를 확대하고 있으며, 그 수는 제재의 역사에 남을 신장(伸張)을 기록하고 있다고 표현했다.
이 같은 독자적 제재가 가능했던 주요한 이유는 미국이 달러라는 기축통화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달러는 1944년 브레턴우즈 협정으로 기축통화 지위에 올라 지금까지 국제 무역·금융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다. 세계의 과거 금융제재 중 미국이 발동한 것이 약 90%에 달한다. 미국이 주도하기에 그만큼 강력한 위력을 가질 수 있었던 셈이다.
미국 금융제재의 칼날을 더욱 예리하게 만들었던 것은 스위프트 협력이다. 스위프트는 어느 곳의 누구로부터 얼마만큼 누구의 어떤 계좌로 송금되는가 하는 정보가 모두 담겨 있기 때문에 금융제재에 있어 일종의 ‘관문’으로 일컬어진다. 벨기에에 본사를 두고 있는 스위프트는 유럽연합(EU) 관할권에 속하지만 사실상 미국의 압력을 따르는 형국이어서 스위프트가 미국 정부의 ‘하청 기관’으로 전락했다고 깎아내리는 목소리도 존재한다.
제재 남용이 ‘통화 다극화’ 체제 부를까
미국이 금융제재를 남용하면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달러로부터의 이탈을 가속화할 수 있다는 전망도 있다. 러시아와 중국은 이미 8~9년 전부터 스위프트망 배제에 대비해 독자적인 국제 금융결제망을 구축해 왔다. 러시아는 2014년 크림반도 병합 당시 스위프트망 차단 가능성이 제기된 이후 곧바로 러시아 금융결제 정보전달시스템(SPFS)을 구축했고, 중국도 2015년 위안화 중심의 중국 국제금융거래 결제시스템(CIPS)을 만들었다.
이미 중국과 러시아가 양국 간 교역에서 CIPS를 활용할 가능성이 커졌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CIPS가 스위프트 등 미국이 통제하는 글로벌 결제시스템의 대안으로 여겨질 수 있다는 것이다. ‘금융 고립’에 처한 러시아가 우방국인 중국 의존도를 높일 것으로 예상되면서 중국 위안화 몸값도 뛰는 실정이다.
정민현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부연구위원은 “SPFS와 CIPS가 본격적으로 연계되면 새로운 국제 결제시스템이 출범할 수 있다”며 “달러 주도의 일극 통화체제에서 지역 블록 중심의 통화 다극 체제가 도래할 가능성이 더 높아졌다”고 말했다.
이렇게 되면 전 세계 국가 참여로 강력함을 구축해 왔던 미국의 금융시스템이 약화되고, 달러의 패권도 상실될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미국 내에서도 금융제재의 발동은 신중히 행할 필요가 있다는 제언이 나온다. ‘미국의 제재 외교’를 쓴 스기타 히로키는 “미국의 금융제재에 대한 의존이 급속하게 높아지고 있는데, 역설적이게 달러와 금융의 힘을 삭감시키는 것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다만 러시아·중국 결제망의 이용 비중이 아직 미미하고 시스템 역량도 떨어지기 때문에 한계가 분명하다는 분석도 있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SPFS는 그냥 단순한 ‘메시지망’ 수준이고, 위안화 국제 결제 비중도 아직 2~3% 정도밖에 안 된다”며 “통화 다극 체제는 아직 너무 먼 얘기”라고 말했다. 다만 “미국이 20년 넘게 금융제재를 전가의 보도처럼 많이 쓰는 것에 대해 반작용과 반발은 계속 있어온 것은 사실”이라며 “이번 금융제재가 이 같은 반발을 강화하는 요인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세종=신재희 기자 jsh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