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민간인 거주지역 포격까지 서슴지 않자 전 세계가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으로부터 빠르게 등을 돌리고 있다. 유엔이 채택한 ‘우크라이나 침공 규탄’ 결의안에는 러시아의 가장 든든한 우방으로 여겨졌던 중국마저 반대하지 않고 기권을 택했다.
유엔은 우크라이나 전쟁 개전 8일째인 2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긴급특별총회를 열어 러시아의 침공을 규탄하고 즉각 철군을 요구하는 내용의 결의안을 찬성 141표, 반대 5표, 기권 35표로 가결시켰다고 밝혔다.
이 결의안은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결의안과 달리 법적 구속력은 없지만, 회원국 대다수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은 만큼 푸틴 정권에 상당한 압박으로 작용할 것이란 예상이 나온다. 미국과 서방은 총회 결의안을 큰 표 차이로 통과시킴으로써 국제무대에서의 러시아 고립을 심화시키고 진행 중인 경제 제재 수위를 더욱 높일 것으로 전망된다.
우리나라를 포함한 서방 선진국들 대부분이 찬성 대열을 이끈 반면 반대표를 던진 국가는 북한 벨라루스 에리트레아 시리아와 당사국인 러시아밖에 없었다. 심지어 러시아와 가까운 중국과 인도 이란 등도 반대하지 않고 기권하는 데 그쳤다.
러시아군에 의해 우크라이나 국토가 유린당하자 옛 소련 소속이던 국가들이 유럽연합(EU) 가입을 서두르는 모양새다. EU에 편입되지 않을 경우 미국·서방 주도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를 통한 군사지원과 안전보장이 어렵다는 판단 때문이다.
AFP통신은 우크라이나 동남쪽에 있는 조지아가 EU 가입에 나섰다고 보도했다. 조지아 집권당인 ‘조지아의 꿈’ 이라클리 코바기드제 의장은 “조지아의 EU 가입은 우리 국민의 안녕과 안보가 개선되는 길로 인도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조지아는 지금의 우크라이나와 같은 경험을 지니고 있다. 2008년 자국 영토였던 남오세티야가 분리 독립하려하자 내전이 발발했으며, 조지아 정부는 4일 만에 항복해 남오세티야를 러시아에 빼앗겼다.
몰도바 역시 EU 가입을 서두를 것으로 예상된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뿐 아니라 최근 들어 친서방 행보를 강화하는 조지아와 몰도바 등을 눈엣가시로 여겨왔기 때문이다.
미국은 러시아와 벨라루스에 대한 추가 제재 조치를 발표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러시아의 핵심 수입원인 러시아 정유사를 대상으로 원유·천연가스 추출장비에 대한 수출통제를 골자로 한 추가제재안에 서명했다. 제재안에는 러시아의 22개 국방 관련 기관도 포함됐다. 러시아의 무기 개발과 생산을 제약하겠다는 것이다.
세계 3대 투자은행인 JP모건은 고객들에게 보낸 메시지를 통해 러시아의 디폴트 가능성을 경고했다. 러시아 외화보유액 6430억 달러의 상당 부분이 미국과 서방의 제재로 묶여 있고, 지불 수단 중단 등으로 당장 이달 돌아오는 7억 달러 이상의 외화채무를 감당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는 것이다.
신창호 선임기자 proco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