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31년 프랑스 루이 필리프 1세는 외국인들로 5개 용병부대를 꾸려 알제리에 파병했다. 식민지의 반란을 진압하면서 유럽 각국에서 몰려든 부랑자들을 정리하는 일석이조 카드였다. 외국인이고 모병(募兵)이니 위험한 해외 전투에 투입하기 용이해서 몇 년 뒤 아예 정규군에 편제했다. 돈을 위해 싸우는 용병을 넘어 프랑스를 위해 싸우는 외인부대가 등장한 것이다. 프랑스 육군은 지금도 레지옹 에트랑제라는 사단급 외인부대를 운영하고 있다.
1863년 4월 30일 멕시코에서 벌어진 카메론전투는 전설이 됐다. 금화를 수송하던 프랑스 외인부대원 65명이 멕시코군 3000명과 맞닥뜨렸다. 작은 농장에 방어태세를 구축한 이들은 멕시코 기병대를 조준사격으로 막아내며 10시간을 버텼다. 외인부대 60명이 죽었을 때 멕시코군 사상자는 500명이 넘었고, 총알이 떨어진 마지막 5명도 항복 대신 착검 돌격을 감행했다. 외인부대의 용맹을 보여준 이 전투를 기리며 레지옹 에트랑제는 매년 4월 30일 퍼레이드를 벌인다.
스페인도 프랑스를 벤치마킹해 1920년 외인부대 라 레히온을 창설했다. 쿠바 출신이 많았고, 주로 북아프리카 식민지 전투에 투입됐다. 훗날 독재자가 된 프랑코도 이 외인부대 사령관이었다. 1936년 시작된 스페인 내전은 외인부대 간의 대결이기도 했다. 프랑코의 반란군에는 식민지 출신 외인부대가, 공화국 정부군에는 유럽과 미주의 진보 진영에서 자원한 4만명의 국제여단이 있었다. 소설가 어니스트 헤밍웨이와 조지 오웰도 국제여단 일원으로 참전했다. 돈도, 제2의 조국도 아닌 신념과 가치를 위해 싸운 외인부대였다.
지금 우크라이나에 다시 그런 군인들이 몰려가고 있다. 닷새 전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이 국제여단 창설과 의용군 모집을 알리자 영국 공수부대와 프랑스 외인부대 출신을 비롯해 많은 이들이 “나와 당신의 자유를 위해 싸우겠다”며 화답했다. 우크라이나인의 결사항전부터 국제의용군의 등장까지, 푸틴은 전쟁이란 도박을 하면서 너무 많은 것을 계산에서 빠뜨렸다.
태원준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