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를 며칠 새 몇 번을 봤는지 모른다. 출처를 어린 왕자라고 밝힌 글 때문이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 뭔지 아니?” “흠, 글쎄요, 돈 버는 일? 밥 먹는 일?”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사람이 사람의 마음을 얻는 일이란다. 각각의 얼굴만큼 다양한 각양각색의 마음을 순간에도 수만 가지의 생각이 떠오르는데, 그 바람 같은 마음을 머물게 한다는 건 정말 어려운 거란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나를 좋아해 주는 건 기적이란다.” 여기에 이런 주석도 달려 있다. “일상에 기적을 만들어갑시다.”
그런가보다 지나쳐도 상관없었다. 하지만 어린 왕자의 내용을 기억하지 못해서였는지, 직업의 촉인지, 내용이 좋아서였는지 확인해보고 싶었다. ‘어린 왕자’를 아무리 읽어도 찾을 수 없었다. 할 수 없이 검색을 시작했다. 어린 왕자에 나오는 글이라고 옮겨진 것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영상으로 만들어 놓기도 했다. 심지어 신문사 칼럼에 인용되기도 했다. 검색 결과를 몇 쪽 넘겨서야 같은 생각으로 먼저 찾아본 네이버 블로그 아이디 DLPH의 글을 발견했다. 지식인 의견 댓글에서 출처를 발견했다고 했다. “overlapjh(아이디):문서영님의 소금 편지에 나오는 글귀입니다. 어린 왕자가 아니고요. 아마도 누군가 잘못 써서 올린 게 퍼지고 퍼진 듯해요. 04.12.29 17:47” DLPH는 소금 편지의 실제 내용과 각색되고 덧써진 글을 구분해 써놨다.
‘소금 편지’ 책을 검색했다. 2004년 출간됐다. 책 소개의 본문 일부 보기에서 같은 내용을 찾았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사람의 마음을 얻는 일 같아. 각각의 얼굴만큼이나 다양한 각양각색의 마음은 순간에도 수만 가지 생각이 떠오르는데, 그 바람 같은 마음이 머물게 한다는 건 정말 어려운 거 같아.” 맹그로브 숲이 하트 문양으로 보이는 사진을 보면서 어린 왕자를 떠올린 작가가 상상 속 어린 왕자와 대화하면서 깨달은 생각을 서술하는 부분이었다. 누군가 좋은 글이라 여겨 지인과 공유하면서 어린 왕자 부분 때문에 출처를 착각했을 수 있었겠다 싶다. 어린 왕자에 나왔다고 하면 설득력이 있어 보일 것이란 생각에 누군가 왜곡했을 수도 있다. 어찌 됐건 17년째 틀린 출처로 회자되는 건 잘못된 일이다.
바람 같은 마음을 붙잡기 위해 다양한 약속이 난무하고 있다. 엉뚱한 내용이나 출처가 모호한 내용을 확인하지도 않고 마구 말하기도 한다. 오히려 수만 가지 생각이 든다.
2007년 제17대 대선을 앞두고 ‘나에게 맞는 대통령 후보는?’이라는 인터넷 이벤트 페이지를 기획해 선보였다. 정동영 이명박 권영길 이인제 심대평 문국현 정근모 허경영 전관 금민 이수성 이회창 후보가 출사표를 낸 상황이었다. BBK 주가조작 사건 등이 이슈였고, 지역 구도와 네거티브로 혼란했다. 정당·인물보다 공약으로 후보와 정당을 비교해보자는 취지로 이벤트를 기획했다. 참여자는 후보와 정당을 배제한 분야별 공약 중 마음에 들거나 이뤄져야 하는 정책을 선택하면 된다. 선택한 공약의 후보를 적합도와 함께 복수로 추천했다. 결과를 보고 의외라는 반응이 많았다. 기술적인 문제로 자료를 찾을 수 없어 기억에 의존하는 점이 아쉽지만 정동영 이명박 이회창 등 유력 후보의 정책보다 문국현 권영길 후보의 정책이 훨씬 많이 선택됐다.
이제 결정할 시간이 다가온다. 후보에 대한 인상 평가, 흑색선전, 다양한 변수 등을 배제하고 선거 공보물을 꼼꼼히 보면서 미심쩍은 정책은 귀찮더라도 확인해보길 바란다. 어린 왕자 이야기 원문을 찾으려 보낸 반나절보다 안 걸린다. 의외로 쉽게 마음을 정하게 될지 모른다.
전재우 사회2부 선임기자 jwje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