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 선거, 다수결 원칙은 완벽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인류 역사상 가장 발달한 정치 체제라고 할 수 있다. 이미 사전투표 등으로 대선이 시작된 셈인데 대선이 끝나면 결과에 따라 어떤 이는 살맛 나서 환호하고, 어떤 이는 우울증이 걸릴 정도로 낙담할 것이다. 투표권도 한 표요 당선자도 한 사람이니, 내가 원하는 사람이 반드시 당선자가 되리라는 보장은 없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누가 됐건 다점자가 당선자가 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선거 특히 선거 결과에 대해 언급하는 것이 조심스러운 만큼 선거 결과가 나오기 전에 미리 몇 마디 해두자.
선거 결과에 대한 불만은 여러 가지 현상을 초래한다. 대표적인 것이 선거 절차를 문제 삼는 부정선거 음모론이다. 역사를 돌아보면 선거 후에 여러 나라에서 부정선거 시비가 벌어지곤 했다. 한국의 경우는 대표적인 것이 바로 4·19혁명을 촉발한 3·15 부정선거(不正選擧)이다.
그런데 부정선거만큼 혹은 그 이상으로 중요하지만 주목받지 못하는 현상이 있다. 바로 선거부정(選擧否定)이다. 선거부정은 선거 결과를 거부하는 태도다. 선거에 참여했다면 다수결 원칙도 인정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거 결과가 마음에 맞지 않는다고 해서 선거부정을 한다면 선거 원칙 자체를 부정하는 셈이다. 이래서는 민주주의를 진행할 수가 없다.
선거부정의 가장 비극적인 사례 가운데 하나는 미국의 남북전쟁이다. 남북전쟁의 원인은 여러 가지지만, 실제로 도화선이 된 것은 공화당 후보였던 에이브러햄 링컨이 대통령에 당선된 선거에 대한 선거부정이라고 할 수 있다. 1860년 말 링컨은 당선자가 됐고, 1861년 3월 취임 예정이었다. 그러나 선거와 취임 사이 기간에 링컨의 정책에 반대했던 미국 남부의 일부 주들이 미 연방을 탈퇴해 남부연합을 구성했다. 이 정치독립선언은 결국 남북전쟁이라는 내전으로 번졌고, 미국 역사상 최다 사상자를 낸 가장 비극적인 전쟁이 되고 말았다. 이후 1864년 말 링컨은 공화당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일종의 연립정당을 구성해 근소한 차이로 재선됐다. 1865년 3월 링컨은 재취임했지만 얼마 되지 않아 암살당했다. 결국 링컨에 대한 두 번의 선거부정은 연속적 비극으로 이어졌다.
대선 후보는 개별 정당의 후보이지만 당선자는 개별 정당이 아닌 국가의 대통령이 된다. 유권자는 새로운 당선자에게 정책을 실현할 기회를 주어야 한다. 문제가 있다면 단기적으로는 대통령 재임 중에 정책에 대한 비판을 하면 된다. 한국은 대통령 탄핵까지 이뤄질 만큼 대통령의 전횡을 막을 수 있는 경험과 능력이 있다. 그리고 장기적으로는 재임 기간의 성과를 다음 선거에서 투표로 심판하면 된다. 즉 선거를 통해 정당과 정치인은 통치 기회를 얻고, 유권자는 그 결과에 따라 심판하는 것이다. 잘했으면 계속 기회를 주고, 못 했으면 바꾸면 된다. 그래서 선거를 하는 것이다.
적어도 1987년 6월 항쟁 이후 지난 30여년 동안 7명의 후보가 선거를 통해 대통령이 됐다. 흔히 선거는 무혈혁명이라고 한다. 왜냐하면 피를 흘리지 않고 정치 세력 교체가 이뤄지기 때문이다. 이 시점에서 정당과 정치인은 물론이고 유권자인 국민 각자가 선거의 의의를 되새길 필요가 있다. 우리는 혼란 속에 대선을 맞고 있지만, 이러한 혼란은 선거로 일단락하고 선거 이후에는 국민 통합을 통해 대한민국의 발전과 평화를 이뤄나가야 한다. 대한민국의 주인은 대통령이 아니라 국민이다. 그래서 유권자의 권리와 책임은 선거라는 행사 자체로만 끝나지 않는다. 이제 시작이다.
안교성 장로회신학대학교 역사신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