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쪽이 넘는 이 두툼한 책은 3부로 구성됐다. 2부와 3부는 일제강점기와 해방 이후 1960년까지 한국의 세무 기구에 대한 분석이다. 1934년 설치된 국내 최초의 중앙집권적 세무 기구인 조선총독부 세무관서의 설치와 운영을 들여다보고 미군정기와 제1공화국 시기 세무 기구·인력·행정 등을 살핀다. 이 작업은 대한민국 형성 과정에서 세무 제도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운영됐는지에 대한 최초의 분석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2·3부는 저자 손낙구(59)의 2015년 박사학위 논문을 바탕으로 작성됐다.
저자가 이 연구를 시작한 이유는 역사학도로서 학술적 관심 때문만은 아니다. 그는 대한민국이 탄생하고 민주주의가 시작될 때, 그러니까 한국에서 근대국가가 시작될 때 세무와 민주주의가 어떤 관계를 형성했는지 알고자 했다고 밝혔다. ‘세무’가 아니라 ‘조세와 민주주의’가 핵심이다. 100쪽 분량의 1부에 이런 주제를 담았다. 서구에서 조세가 어떻게 민주주의와 근대국가를 만들고 변화시켰는지 다루고, 한국에서 양상은 이런 흐름과 왜 달랐는지 분석한다. 책을 관통하는 질문은 ‘서구에서는 민주주의가 조세라는 사회경제적 의제와 뗄 수 없는 관계 속에서 탄생하고 발전했는데, 왜 한국에서는 조세 문제가 민주주의 체제 안이 아니라 바깥에 존재하게 됐는가’이다. 그 답을 찾기 위해 국내 세무 제도의 기원을 추적했다.
손낙구에 따르면 “유럽에서 근대국가가 형성된 이래 현재에 이르기까지 조세는 민주주의 바깥이 아니라 안에, 그것도 핵심으로 자리 잡아 왔다.” ‘대표 없이 과세 없다’는 유명한 말처럼 서구 근대국가는 조세국가였다. 근대 의회는 군주와 시민들이 조세 문제를 놓고 벌인 협상 무대에서 탄생했으며, 조세의 대가로 납세자들은 대표를 뽑고 이들을 통해 조세 문제를 중심으로 한 사회경제적 갈등을 다루도록 했다.
그러나 “한국의 민주주의는 조세 및 이를 둘러싼 계급간 이해관계와 무관했다.” 손낙구는 이번 연구를 통해 “(한국에서 민주주의가) 출발할 때부터 조세는 민주주의 바깥에 존재했던 것”임을 확인한다.
일제는 식민지 조선에서 의회를 설치하거나 조선인에게 선거권을 부여하지 않은 채 과세했다. ‘대표 없는 강압 과세’였다. 조세가 대표를 낳지도 않았고 조세에 대한 협상도 없었다. 이후 들어선 미군정과 이승만·박정희 정권에서도 조세는 정치의 핵심 의제가 아니었다. 국가 재정을 조세 수입에 의존하는 대신 차입금과 해외 원조를 통해 조달했기 때문이다.
한국은 오랫동안 조세국가가 아니라 원조국가였고 조세는 민주주의의 의제가 아니라 국가의 의제였다. 얼마만큼의 조세를 누구에게서 거둬 어떤 목적으로 누구를 위해 지출할지에 대한 실질적 결정권을 정부에게 맡겼다.
이런 역사의 결과물이 현재의 ‘작은 조세국가’다. 경제 규모에 비해 조세 부담률이 낮은 ‘작은 조세국가’는 역대 정권의 저조세와 감세 정책의 결과이기도 하지만 정치에서 조세를 둘러싼 설득과 타협의 회피, 복지확충을 위한 증세 시도의 회피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였다.
저자는 한국의 정치와 민주주의가 조세와 깊게 연결되지 못한 이유를 보여주며 이를 ‘조세 없는 민주주의’라고 명명한다. 정치학자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가 얘기한 ‘노동 없는 민주주의’를 떠올리게 하는 표현이다. 노동 의제가 배제된 민주주의, 노동자를 대변하는 정치세력이 배제된 민주주의를 말한다. 손낙구는 이번 연구를 통해 한국 민주주의의 또 다른 구멍을 발견했다. ‘조세 없는 민주주의’는 한국 정치와 민주주의에서 왜 먹고사는 문제가 중요하게 다뤄지지 않는가에 대한 대답이 될 수 있다. 복지국가를 위한 증세 담론을 여는 키워드가 될 수도 있다.
김남중 선임기자 n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