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LB 노사 ‘쩐의 전쟁’ 합의 실패… 27년 만에 리그 파행

입력 2022-03-03 04:05
롭 맨프레드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 커미셔너가 1일(현지시간) 미국 플로리다주 주피터의 로저 딘 스타디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사무국과 선수노조 간 합의 불발로 인해 내달 1일로 예정된 올 시즌 MLB 정상 개막이 무산됐음을 발표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 정규시즌 개막이 무산됐다. 다음 달 1일 정상 개막을 위한 마지노선이었던 1일까지 협상을 이어갔지만 타결은 없었다. 지난해 노사단체협약(CBA) 개정 실패 이후 MLB 직장폐쇄가 지속되면서 27년 만에 리그 파행이 현실화됐다.

롭 맨프레드 MLB 사무국 커미셔너는 2일 “팀당 162경기의 정규시즌 일정을 ‘최대 156경기’로 축소한다”며 “일단 개막 후 두 차례 시리즈(팀당 6경기)를 취소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그는 “어느 한쪽의 노력이 부족했던 것은 아니다”라면서도 “1994년 새로운 합의 없이 시즌을 시작한 뒤 월드시리즈가 취소된 아픈 역사를 반복하고 싶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94년 MLB 사무국과 선수노조는 샐러리캡 도입을 둘러싼 이견을 극복하지 못한 채 시즌에 돌입했다. 결국 시즌 후반 파업에 들어갔고 잔여일정과 포스트시즌 전체가 취소되는 홍역 끝에 이듬해 4월에야 종료됐다. 새 시즌은 18경기가 단축된 144경기 체제로 진행됐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노조는 사무국과 구단주 측이 ‘정규시즌 한 달 단축’ 가능성을 시사하며 전달한 ‘최종 제안’을 만장일치로 거부했다. ESPN 칼럼니스트 제프 파산은 “사무국의 메시지를 선수들이 명백한 협박으로 받아들이고 있다”고 전했다.

최대 쟁점은 공교롭게도 27년 전 이슈인 샐러리캡과 직결된 사치세다. 소프트 샐러리캡에 해당하는 사치세 기준을 놓고 선수노조는 올해부터 증액을 시작해 2026년 2억6300만 달러까지 올리는 방안을 주장한 반면 사무국은 현행 유지에 더해 2026년 2억3000만 달러까지 올리자는 안을 제시했다. 재정 부담 증가를 우려하는 구단들은 여전히 난색을 표하고 있다. 3년차 미만 비연봉조정선수를 위한 보너스풀(최대 보너스) 규모를 놓고도 의견차가 여전하다.

포스트시즌 참가 팀 확대(현행 10팀→12팀), 지명타자 제도와 드래프트 개선 등에는 대략적 합의에 도달했다. 최저 연봉은 현행 67만5000달러에서 70만 달러로 올리는 안을 사무국이 제안해 노조측(72만5000달러) 제안과 차이를 어느 정도 줄인 것으로 전해진다.

사무국은 “의미 있는 진전이 있었다. 합의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지만 맨프레드의 리더십에는 크게 흠집이 갔다. 직장폐쇄 당시 올 시즌 정상 진행을 장담하고도 한 달 넘게 기존 제안만 고수하며 구단주 측과 노조 사이 중재에 실패, 사태를 악화시켰다. 노조는 “‘방어적 직장폐쇄 조치’가 맨프레드가 어떤 사람인지를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엄청난 충격”(마이클 로렌젠) “맨프레드는 떠나라”(마커스 스트로먼) 등 선수들의 비판도 쏟아졌다.

경기 축소와 직장폐쇄 연장으로 직격타를 받는 건 일단 선수들이다. 취소 경기에 대한 급여가 지급되지 않고, 시즌 추가 축소에 따라 하루 약 0.5% 정도 연봉삭감이 이뤄질 것으로 AP통신은 예측했다. 김광현처럼 자유계약(FA) 시장에 나와 있는 선수들의 협상 및 행선지 결정도 계속 미뤄지고 있다.

리그 파행을 예감한 선수들은 협상 데드라인을 앞두고 공개적으로 불만을 드러냈다. 지난해 내셔널리그 MVP 브라이스 하퍼는 SNS에 일본프로야구 요미우리 유니폼을 합성한 사진을 올리며 “자이언츠 거기 있냐”고 농담을 던졌고 요미우리도 “유니폼 사이즈는”이라고 물으며 응수했다. 조이 갈로는 “구직사이트에 가입했다”며 경력사항에 ‘뉴욕 양키즈 외야수’, 특기는 ‘삼진 당하기, 시프트에 타구 날리기, 옷 이상하게 입기’라고 적어 현 상황을 풍자했다.

정건희 기자 moderat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