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방역의 민낯… 장애인 가족의 험난한 코로나 투병기

입력 2022-03-03 00:03
장애인단체 회원들이 2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가 코로나19 확진 장애인을 방치하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한명오 기자

중증장애인 박현(47)씨는 지난달 15일 생후 29개월 된 아들이 어린이집에서 코로나19에 감염됐다는 소식을 듣고 가슴이 철렁했다. 지체장애 1급으로 휠체어를 타고 거동하는 그에게 아이를 돌보는 일은 평소에도 쉽지 않다. 뇌병변장애가 있는 부인 김미현(46)씨도 마찬가지다. 여기에 코로나19에 감염된 아들 병간호까지 해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아이는 비장애인이지만 나이가 어려 홀로 격리 조치를 하기 어려웠다. 부부는 감염을 무릅쓰고 아이와 자택격리에 들어갔다. 아이는 열이 나고 기침을 계속했다고 한다. 보건 당국에서 비대면 진료를 받을 수 있는 동네 병의원 명단을 보내왔지만 연결이 쉽지 않았다. 부부는 이전에 처방받았던 감기약을 먹이며 증세가 호전되길 기다려야 했다.

1주일 뒤 아들의 격리 기간이 종료되면서 코로나19에서 벗어나 일상으로 돌아갈 것으로 기대했지만, 이번에는 김씨가 확진됐다. 그다음 날 박씨까지 확진 판정이 나왔다. 아이를 돌봐 줄 사람이 없어 부부는 병원에도 가지 못하고 집에서 그냥 버틸 수밖에 없었다. 두 사람 모두 열이 38도까지 오르고 목이 붓고 아파 말을 하기 어려울 정도로 증상이 심각했다.

더 큰 문제는 격리 기간이 끝났던 아들이 다시 코로나19 증상을 보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열이 37.6도까지 오르고 기침을 계속하는 아이를 보며 부부는 막막했다. 집에 있던 감기약도 떨어진 터였다.

다급해진 부부는 아이 감기약 처방을 받았던 서울 성북구의 한 소아청소년과병원에 연락해 비대면 진료를 받을 수 있는지 문의했지만 병원은 진료를 거부했다. 지침상 일반관리군 확진자가 7일 격리 기간 이후 증세가 지속될 경우 자비로 비대면 진료를 받을 수 있지만, 병원 측은 “아이 격리 기간이 끝나 더 이상 확진자가 아니기 때문에 진료가 어렵다”고 답변했다고 한다.

부부는 할 수 없이 아이를 간호해 줄 장애인 활동보조사를 신청했다. 하지만 민간단체는 2명의 확진자가 있는 집을 방문하려 하지 않았고, 공공서비스 기관에는 대기자들이 밀려있었다. 결국 부부는 충북 청주에 사는 처제에게 부탁해 종합감기약과 해열제를 긴급택배로 받아 아이에게 먹일 수밖에 없었다. 박씨는 “현재는 아이 상태가 호전됐지만 우리 부부는 ‘아이가 부모 잘못 만나 고생한다’며 자책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박씨와 장애인단체들은 2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의 방역 포기로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들이 사각지대로 내몰리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정부가 주장하는 효율적인 방역체계 전환은 오미크론 유행 때문이 아니라 공공 의료인프라 부족 때문임을 인정하라”고 요구했다.

백인혁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활동가는 “장애인 확진자가 방치되는 것을 막기 위해 장애인을 모니터링 대상인 집중관리군에 포함하고 활동보조사들이 감염 우려 없이 장애인 확진자 집을 방문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게 시급하다”고 말했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