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엿새째인 1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키이우)의 철도 중앙역 플랫폼은 아비규환의 현장이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러시아의 대규모 공세를 앞두고 서부 도시 이바노프란키우스크행 기차를 타려고 수천명이 몰린 처절한 현장 분위기를 전했다.
공포에 질린 아이들의 울음소리가 울려 퍼졌고, 군인들은 역사 내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고함을 질러댔다. 15살 딸과 함께 기차역에 나온 미술사학자 타냐 노브고로그스카야(48)는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마치 제2차 세계대전의 한 장면을 담은 사진을 보는 것 같지 않으냐”며 “이제 겨우 5일 됐다. 한 달 뒤엔 무슨 일이 벌어질지 상상이 가느냐”고 반문했다.
간신히 구한 열차 티켓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질서 유지를 맡은 군인들이 표에 상관없이 어린이를 동반한 여성부터 그 외 여성, 노약자 순서로 탑승을 허용했기 때문이다. 기차는 도착하자마자 몰려든 사람들로 순식간에 가득 찼고, 일부 가족은 아이들과 엄마만 먼저 태울 것인지 결정해야 했다.
기차가 떠나자 플랫폼에 남은 사람들은 절망했다. 한 젊은 커플은 부둥켜안고 울었고, 한 여성은 고양이를 안고 기둥에 기대선 채 훌쩍였다. 아내와 함께 반려견을 데리고 기차를 타러 나온 한 남성은 탑승 우선 자격이 한참 떨어져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필사의 탈출 러시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플랜 B’가 가동된 데 따른 것이다. 러시아는 단시간에 키예프를 점령하지 못하고 예상외로 고전을 면치 못하자 민간인 피해 가능성이 큰 대량살상무기까지 동원하고 있다. 이미 우크라이나 제2도시인 하르키우에선 민간인에 대한 무차별 폭격이 자행됐다는 소식이 전해지고 있다. 정보 당국은 러시아군이 곧 키예프를 포위한 채 화력을 집중해 맹공격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노브고로그스카야는 “이제는 키예프를 떠날 마지막 기회라는 것을 알게 됐다”며 “남아서 같이 싸우고 싶지만 아이를 지키기 위해 떠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유엔난민기구(UNHCR)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국외로 떠난 피란민이 2일까지 약 83만6000명으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이 가운데 절반 이상인 45만4000명이 폴란드로 떠났으며 이어 헝가리(11만6000명), 슬로바키아(6만7000명), 몰도바(4만3000명), 루마니아(3만8000명) 등이었다.
필리포 그란디 UNHCR 대표는 “지금까지의 피란민은 차가 있거나 유럽에 일부 연고가 있는 사람들이었다면 러시아의 공격이 계속될 경우 더 취약한 사람들이 피란길에 오를 수 있다”며 “금세기 유럽의 최대 난민 위기로 번질 수 있는 사태를 보고 있다”고 말했다.
영국 더타임스도 1200만명의 난민이 발생했던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최대 규모라고 전했다. 유엔 측은 이번 사태로 인한 피란민이 400만명에 이를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임송수 기자 songst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