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의 주를 만난 사람들] 선한 영향력 끼치려 늘 심장 뛰는 일 찾다 마음에 주님 모신 것만으로도 가슴 벅차

입력 2022-03-07 03:09

모태신앙으로 신앙생활을 잘 하리라는 각오로 대학에 들어갔지만, 하고 싶은 것이 너무 많았다. ‘기독교인답게 살면 되지.’라며 슬쩍 타협을 하고 선한 영향력을 끼쳐야 된다는 생각에 남들이 싫어하는 일들에 앞장섰다. 과대표, 동아리 부회장, 학과 부학생회장, 총학생회 사무국장 등을 맡고, 주말과 방학엔 각종 봉사활동에 자폐 아동, 노숙인, 북한이탈주민을 돕고 태안에 기름을 닦으러 가기도 했다. 늘 심장을 두근거리게 하는 일을 찾아 춘천에서 서울까지 자전거를 타고 가고, 혼자 며칠 무전여행도 떠났다. 그러나 ‘언제까지 막연하게 하나님을 믿어야 되지?’하는 힘든 마음 상태로 2학년 여름방학에 태국으로 집짓기 봉사활동을 갔다.

거기서 만난 언니에게 영국의 성경학교를 듣고 주변의 만류에도 4학년 마지막 학기를 남기고 영국으로 떠났다. 낯선 생활에 성경말씀과 영어, 두 마리 토끼잡기는 참 힘들었고, 영어가 약해 하루 6시간 강의에도 말씀은 거의 듣지 못했다. 그러다 한인교회의 목사님을 매주 만나며 내 믿음의 실상을 정확히 보았다. 마침, 사귀던 남자친구에게 이별 통보를 받았다. ‘하나님! 도대체 왜 그 사람을 빼앗아 가는 거예요?’ 원망하며 따져 묻다가 말씀으로 해결 받고 싶어 ‘love’가 들어간 성경구절을 다 찾아 읽으며 기도했다. 그때, ‘예수님이 우리를 사랑한 것 같이 우리도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과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다.’는 말씀을 받고 완전히 무너졌다. ‘예수님이 날 위해 죽으셨구나!’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에 크게 감격했지만 ‘내가 남자친구를 위해 죽을 수 있나?’는 질문에는 대답할 수 없었다. 결국 남자친구와 헤어지고 힘든 신앙생활을 이어갔다.

귀국 직전에 gospel 곧, 복음에 대한 강의를 들으며 노트구석에 낙서하듯 ‘So what is the gospel?(그래서 복음이 뭔데?)’라고 적었다. 그것이 내 믿음의 전부였다. 귀국 후 당장 살 곳도 없고, 임용시험도 다가오니 가슴이 답답해졌다. “하나님, 한국에 돌아가면 공부와 신앙을 모두 잘 할 수 있는 곳으로 인도해 주세요.”

9개월 간의 영국생활을 마무리하고 어느 후배를 통해 저렴한 생활비에 공부와 신앙훈련을 할 수 있는 한마음교회 기숙사에 들어갔다. 교회에서는 계속 부활 말씀이 선포되었다. 생활관 동생에게 “왜 꼭 부활이야?”하니 ‘그리스도께서 다시 사신 것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이 헛되다.’는 말씀을 보여 주어 너무 큰 충격을 받았다. 바로 영국의 목사님께 전화했는데 “부활은 기독교의 심장이지. 부활이 없으면 기독교는 존재가치가 없다.”하셨다. 순간, ‘예수님이 부활하셨구나! 하나님이 살아계시는구나!’ 지금까지의 모든 말씀이 한 번에 다 뚫리며 부활 사건이 내 인생 전체를 바꾸었다. 마침 영국에서 함께 지냈던 동생이 한국에 들어왔다길래 5시간이나 걸려 찾아갔다. 그리고 내가 받은 그대로 예수님의 부활을 전하였고 동생은 그 자리에서 예수님을 영접했다. 시간을 다투는 수험생인데도 3개월간 기쁘게 복음을 들고 뛰어다니다 결국 불합격했다. 순간 낙심이 되었지만, 그래도 부활하신 예수님을 생각하며 바로 기쁨을 회복했다. 새벽 예배, 동아리 예배, 작은교회 예배, 수요 예배, 토요 찬양예배, 주일예배에 교회 신발장 청소까지 하며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했고 임용시험 날 아침에도 새벽예배를 다녀왔다. 합격 후 ‘예수께서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는 말씀을 받으며 교직에 첫발을 디뎠다. 어느 날, 수학여행 중에 우리학급 아이가 빗길에 넘어져 허벅지에 50바늘을 꿰매는 큰 사고가 일어났다. 사고 난 아이는 여름성경학교에 참석해 복음으로 교제한 아이였다. 침대시트를 입으로 물며 울음을 삼키는 아이를 끌어안고, 함께 울고 함께 기도하며 정성을 다했다. 아이는 자신의 주인이 예수님이라고 했고, 어머니는 “곁에서 기도해주시는 선생님이 계시니까 편안해져요. 감사해요.”라고 했다. 우리의 모습을 지켜보던 옆 반 선생님은 ‘도대체 예수님을 믿는 것이 무엇인가?’ 하며 고민을 시작했다.

정선에서 근무할 때는 동료 선생님들은 물론, 부족하지만 영국에서 배운 영어로 원어민 선생님들께도 복음을 전했다. 함묵증의 아이가 입을 열고, 서로 미움으로 붕괴되었던 교실이 기쁨으로 회복 될 때의 감격을 잊을 수 없다. 학교를 싫어해 복통과 두통을 달고 있던 아이들이 방학이 되는 것이 싫다고까지 얘기한 것도 모두 나를 통해 예수님의 사랑이 흘러간 덕분이다.

지하철에서 전도를 하다가 만나게 된 남편은 복음의 일꾼으로 든든히 서서 젊은 부부들 가정을 섬기고 있다. 7살 아들도 사명을 감당하는 모습은 큰 기쁨이고 큰 축복이다. 주님 다시 만나는 그 날까지, 학교에서든 가정에서든 그저 사랑하고 싶다. 심장을 두근거리게 하는 일을 좇아 살던 내가, 지금은 살아계신 전능자 하나님을 마음에 모신 것만으로도 가슴이 터질 것 같다. 예수님의 부활로 놀라운 삶을 살게 해 주신 주님께 감사드린다.

김한나 성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