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을 망쳐 꿈꾸던 교사의 길을 접고 하향지원했는데, 술에 취한 아버지가 다짜고짜 대학이 마음에 들지 않으니 가지 말라며 재수 하라고 했다. 그때부터 한 박자 늦은 인생이 시작되었다. 설상가상으로 어머니는 이유없이 아파 입원을 하고, 아버지는 유리파편이 눈에 튀어 한 쪽 눈이 실명위기까지 갔다. 모태신앙인데도 예상치 못한 위기가 덮치고 나서야 기도가 나왔다. 그리고 노트 앞장에 ‘춘천교대 04학번 이한나!’라고 써 놓고 춘천교대를 목표로 재수를 하여 고3 때보다 50점이나 높게 수능 점수가 나와 무난히 합격을 했다.
‘춘천에 가면 자취할까? 하숙할까?’하며 행복한 고민을 하는데 어머니가 가방에서 한마음교회 대학생 기숙사 홍보용지를 꺼내며 “엄마가 다 얘기해 놨어. 여기에 가면 신앙생활과 학교생활을 둘 다 잘할 수 있다더라.” 나는 싫다고 했지만, 한 학기만 살아보라는 설득에 어쩔 수 없이 끌려 들어갔다. 그런데 시설도 좋고, 학교도 가깝고, 언니들이 무척 잘해주어 너무 좋았다. 단지, 언니들이 내 얼굴만 보면 “한나야, 예수님의 부활이 신앙의 근본이야. 부활을 통해 하나님이 살아계신 것을 믿을 수 있어.”하는 말에 내 신앙을 무시하는 것 같아 기분이 살짝 안 좋았다. 악기, 검도, 국토대장정, 오지 배낭여행 등 멋진 대학생활의 꿈에 하나님은 마음에서 점점 멀어져 갔다.
그런데 막상 대학생활은 바쁘고 치열했다. 특히 3학년 때는 폭풍 과제에다 모든 행사를 맡아야 하는 과대표에 제비뽑기로 뽑혀 스트레스만 쌓였다. 이런 대학생활에서 빨리 벗어나고 싶어 하루에 13시간씩 초집중하여 임용고사 공부를 했다. 하지만 동기들은 거의 합격했는데 나만 떨어졌다. 하나님의 또 다른 계획이 있을 거라고 애써 위로했지만, 진짜 속마음은 어떻게 이러실 수가 있느냐고, 내가 뭘 잘못했냐며 하나님께 대들었다. 어느 날 새벽기도 때, 목사님께서 나 들으라는 것처럼 “임용고시 떨어진 건 아무것도 아니에요! 모든 염려를 주께 맡겨야 해요.”라고 말했다. 내겐 정말 큰 문제인데 아무것도 아니라니, 그 말씀에 도저히 ‘아멘’할 수 없었다. 예수님은 나의 관심대상이 아니었다. 오직 나, 내 인생, 내 미래뿐이었다.
그 일로 하나님께서 내 중심을 보게 해 주고, 감추고 있던 내 마음의 밑바닥까지 다 들춰내 주셔서 처음부터 다시 신앙생활을 하는 마음으로 대학생 수련회에 참석했다. 목사님께서 ‘부활은 역사다!’라고 선포하셨다. 순간, 예수님의 부활이 ‘실제 사건’임이 내게 선명하게 비춰졌다. 성령의 역사였다! 부활은 예수님이 하나님이시고, 지금도 살아계신다는 것을 믿을 수 있는 흔들리지 않는 증거가 분명했다. 흔들릴 수밖에 없었던 내 신앙의 무거운 돌덩이가 한 순간에 떨어져나가는 것 같았다. 나를 살리기 위해 죽고 부활하신 분! 그분을 무시하고 내 멋대로 살았던 죄! 예수님을 주인으로 믿지 않은 것이 죄라는 말씀에 회개밖에 할 것이 없었다.
전능자가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나의 주인이 되어주신 사건은 내 인생에서 최고의 사건이다. 임용고사에 떨어진 건 아무것도 아니라던 말씀에 바로 ‘아멘’이 되고, 인생의 시간표를 한 박자 늦추신 것은 예수님을 만나게 해 주시기 위한 하나님의 깊은 뜻이었음이 알아지며 ‘지금 이 눈물을 결코 잊지 않겠다고, 지극히 작은 자의 눈물을 닦아주는 교사가 되고 싶다.’고 하나님께 약속했다. 임용고사에 합격을 했지만 발령이 6개월 늦어졌다. 기간제 아르바이트, 유럽 배낭여행 권유 등이 있었지만 기숙사에 남아 교회 동생들을 섬기며 훈련을 받기로 했다. 내 인생에서 전적으로 주님께 시간과 마음을 드릴 기회가 이 때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 시간을 내 인생의 새벽기도 시간이라고 부른다.
전교생 71명인 작은 시골학교로 첫 발령을 받았다. 학급 아이들이 12명이라 ‘한나쌤의 12제자’라 불리는 아이들은 안정된 부모 밑의 아이가 거의 없이 온통 상처투성이였다. 이 아이들에게 사랑을 부어주라고 걸음을 늦추어 주셨다는 생각에 예수님은 절대로 우리를 떠나지 않는다고, 우리의 삶을 인도해 주실 분은 오직 예수님이라며 주님의 사랑을 마음껏 전해 주었고, 쌓였던 문제들이 하나하나 해결되어 갔다. 두 번째 학교에서는 하나님께서 신우회와 작은 교회를 세워주셨다. 상담을 하러 온 어느 어머님께 “어머니, 저는 예수님 믿는 사람이에요. 아이를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해 사랑하겠습니다.”하자 어머니는 눈물을 흘리시며 선생님과 같이 예수님을 붙잡고 살고 싶다고 고백했고, 결국 교회에도 출석했다.
그 후, 조금 늦은 나이에 결혼을 하고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동역자 남편과 함께 아이들이 사명자로 성장하기를 기도하며 엄마의 자리에서 중심을 드리고 있다. 한 박자 늦은 삶이었지만 하나님의 시간표는 언제나 완벽함을 믿기에, 내게 허락하신 이 삶을 오직 기쁨으로, 감사함으로, 충성함으로 살 것을 주님 앞에 약속드린다. 함께 발걸음을 맞추셨던 예수님, 이 땅의 삶을 마치는 날까지 주님과 끝까지 발걸음을 맞추며 걸어갈 것이다.
이한나 성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