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뮌헨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는 1일(현지시간) 러시아 출신 세계적 지휘자 발레리 게르기예프를 전격 해고했다. 그는 1988년부터 지금까지 명문 마린스키 극장을 이끌며 소련 붕괴 이후 격변기 러시아 음악의 자존심을 지킨 거장으로 평가받는다. 그는 최근 미국 카네기홀 공연에서는 포디엄에 서보지도 못하고 교체됐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한 입장을 밝히라는 클래식계의 요구에 끝내 침묵했기 때문이다. 그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을 공개적으로 지지한 전력이 있다. 아무리 명성이 높더라도 러시아의 이름을 걸고서는 서방 무대에 서기 힘들게 됐다. 경제 제재뿐 아니라 러시아를 향한 문화 보이콧도 확산 중이다.
더 파급력 있는 것은 미국 할리우드 영화계의 러시아 보이콧이다. 올해 영화계 최고 수익이 예상되는 블록버스터 ‘더 배트맨’을 러시아에선 볼 수 없다. 러시아는 할리우드 영화 수입 9위를 차지하는 주요 시장이지만 제작사 워너브라더스는 우크라이나 침공에 항의하며 러시아 개봉을 중단했다. 디즈니 역시 “정당한 이유 없는 침공과 인도주의적 위기를 고려해 러시아에서의 영화 개봉을 중단한다”고 밝혔다. 미국 록밴드 ‘그린데이’는 모스크바 공연을 취소했고, 유럽 최대 음악 축제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에서는 러시아 가수의 무대를 볼 수 없다.
국제 사회는 이제 러시아와는 축구를 하지 않겠다고 한다. 러시아 운동선수들은 세계 대회에 나갈 수 없다. 러시아에서는 할리우드 영화를 보기 힘들다. 러시아 예술가들은 국제 무대에서 퇴출당하고 있다. 이쯤 되면 마음이 더 상하는 쪽은 우크라이나가 아니라 러시아가 아닐까. 우크라이나는 끝까지 조국을 지키겠다는 리더를 중심으로 국민이 똘똘 뭉치고 있다. 세계적 지지와 지원도 이어진다. 반면 러시아 국민은 매일매일 자국이 세계에서 ‘왕따’가 되고 있는 모멸감을 느끼고 있다. 러시아 내부에서 우크라이나 전쟁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점점 세지고 있는 이유다.
한승주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