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억 고가 아파트 산 30대 금수저… 뜯어보니 64억이 ‘아빠찬스’

입력 2022-03-03 04:05

30대 A씨는 지난해 초 서울 용산구의 한 아파트를 77억5000만원에 매수하면서 13억5000만원에 대한 출처는 소명했지만 나머지 64억원에 대해서는 납득할 만한 설명을 내놓지 못했다. A씨의 아파트 매입 자금 출처를 살펴본 국토교통부는 편법 증여가 강하게 의심된다고 판단해 국세청에 통보했다.

아버지가 대표를 맡은 법인에서 6억9000만원의 돈을 조달받아 서울 강남구의 한 아파트를 29억원에 산 B씨도 비슷한 사례다. B씨는 편법 증여에 법인자금유용 혐의까지 추가됐다.

이처럼 9억원 이상 고가 아파트를 구입하면서 증여세를 탈루하거나 명의를 신탁하는 등 위법 행위로 의심되는 사례가 무더기로 적발됐다. 국토부는 2020년 3월부터 지난해 6월까지 신고된 전국의 9억원 이상 고가주택 거래 7만6107건 중 위법 의심거래 3787건을 적발해 관계기관에 통보했다고 2일 밝혔다.

적발된 위법 의심거래 가운데 59.3%(2248건)는 부모에게 자금을 지원받으면서 증여세를 내지 않은 편법 증여 의심거래였다. 편법 증여 의심사례 중에서는 30대가 1269건(56.4%)으로 가장 많았고, 40대가 745건, 50대 이상이 493건, 20대가 170건이었다. 17세 청소년이 서울 소재 아파트를 57억원에 매수하고, 5세 어린이가 부산 소재 아파트를 14억원에 사들이는 등 미성년자의 거래도 2건 있었다. 국토부 관계자는 “부모에게 증여받았으면서 증여세를 피하고자 차용증을 써놓고 이자를 지급하지 않은 사례도 포착됐다”고 말했다.

국세청은 국토부로부터 이관된 거래와 관련해 세무조사를 벌여 탈세 혐의가 드러나는 대로 미납 세금과 가산세를 추징한다는 방침이다. 국토부는 올해 중 부모·자식과 같은 특수관계 간 부동산 직거래 등에 대한 기획조사도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편법 증여 외에도 계약일 거짓신고(646건), 대출용도 외 유용(46건), 실제 가격보다 높거나 낮춰서 신고한 업·다운계약(22건) 등 위법 의심사례 유형은 다양했다. 20대 C씨는 서울 동작구의 한 아파트를 11억4000만원에 아버지 지인에게 매수하면서 계약금이나 잔금을 따로 지급하지 않고 매도인의 채무를 인수하는 조건으로 소유권을 이전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C씨의 아버지가 채무 인수 등과 관련된 조건을 매도인과 합의했으며, C씨는 이 채무를 상환할 능력이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 국토부는 C씨의 아버지가 자녀 명의로 지인의 아파트를 매수한 명의신탁 사례로 보고 경찰청에 수사 의뢰했다. 명의신탁 혐의가 확인되면 5년 이하의 징역 혹은 2억원 이하의 벌금을 물 수 있다.

법인자금을 빼내서 아파트 매수에 유용한 사례도 있었다. 한 중소기업 대표인 D씨는 서울 강남의 한 아파트를 41억원에 매수하면서 회삿돈 16억원을 투입한 것으로 조사됐다. 부산의 한 아파트를 29억원에 매수하면서 기업자금대출로 받은 30억원 중 일부를 사용해 대출 용도 외 사용이 의심되는 법인 사례도 있었다. 금융감독원 조사에서 대출 용도 외 사용이 확인되면 금융기관은 즉시 대출금을 회수한다.

고가주택 위법 의심거래는 서울 강남 지역에서 빈번했다. 강남구가 361건으로 가장 많았고, 서울 서초구(313건), 서울 성동구(222건),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209건), 서울 송파구(205건) 순이었다.

세종=이종선 기자 remembe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