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나 리아코프스카야(40·여)씨는 현재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키이우)에 거주하고 있지만, 원래 국적은 러시아다. 고향은 우크라이나 동남쪽에 위치한 볼고그라드. 우크라이나인 남편과 결혼하면서 국적을 바꿨다. 하루 전 리아코프스카야씨는 고향에 사는 언니 집에 전화를 걸었다. 10대 중반인 조카는 “러시아군이 키예프 시내 민간인 거주지역을 포격했다”는 그녀의 말을 전혀 믿지 않았다. 조카는 “러시아 특수부대가 우크라이나 신나치 세력만 진압하고 있다”는 대답만 반복했다. 바로 옆에 있던 7살짜리 아들은 “엄마, 유치원까지 불타게 한 러시아는 용서할 수 없어”라고 말하고 있었다.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1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전쟁이 친척들이 서로 총부리를 겨누는 참극이 되고 있다”며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만든 비극”이라고 보도했다.
2011년 우크라이나 인구조사통계에 따르면, 전체 국민 4300만여명 가운데 49%가 러시아인과 혈연관계를 맺고 있다. 두 명 중 한 명이 러시아인 친척을 가지고 있을 정도로 두 나라 국민은 가깝다는 뜻이다.
현재 러시아에 거주하는 우크라이나인도 무려 260만명에 이른다. 두 국가 국민은 언어도 비슷하고, 9세기쯤 발흥한 키예프공국을 같은 선조로 하는 동슬라브민족이라는 뿌리도 같다.
이런 상황에서 벌어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면전은 피를 나눈 형제들에게 총구를 겨누는 전쟁과 다름이 없는 것이다.
전쟁의 양상은 이제 러시아군의 우크라이나 주요도시 민간거주지역 집중포격과 시가전도 불사하는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미국 버지니아주 메리워싱턴대 댄 허바드 교수는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매일 밤 내 조카들이 서로 죽이는 꿈을 꾼다”고 말했다. 미국인 아버지와 우크라이나 혈통의 러시아인 어머니 사이에 태어난 허바드 교수는 지금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이모네 자손, 우크라이나 하르키우의 또 다른 이모네 친척들과 전화 통화를 하는 사이다. 휴가를 내 두 도시의 친척을 찾아 여행을 간 적도 있다.
그는 “휴가 때 만났던 젊은 조카들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군대에 각각 입대했을 것”이라며 “러시아가 하르키우를 집중 포격했다는 뉴스가 나오는데 나는 아예 TV를 켜기도 싫다”고 했다.
자신을 조야라고만 밝힌 20대 여성은 모스크바에서 자란 러시아인이지만 어머니는 우크라이나인, 아버지는 러시아인이다. 어릴 적 방학 때면 우크라이나 오데사의 외가에 가서 외할머니가 불러주는 우크라이나 민요를 듣고 자랐다고 한다. 조야는 “이번 전쟁은 내 아버지와 내 어머니가 벌이는 살육전을 연상케 한다”고 했다.
NYT는 “푸틴은 전쟁 발발 전 TV연설을 통해 ‘우크라이나는 우리와 혈연관계’라고 말했다”면서 “그 정도로 친밀하게 얽힌 우크라이나인들이 사는 아파트는 물론 병원 유치원도 가리지 않고 진공폭탄까지 동원해 포격하는 그를 양국 국민이 정말 이해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전했다.
신창호 선임기자 proco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