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완성차 업체의 중고차 시장 진출에 대한 결정을 대선 이후로 미뤘다. 하지만 자동차 업계는 현대자동차그룹의 중고차 사업을 사실상 기정사실로 한다. 관련 사업등록 신청도 이미 마쳤다. 중고차판매업의 중소기업 적합업종 지정 기한이 만료된 2019년 2월 이후 3년을 기다린 현대차그룹이 더 지체할 수 없다고 판단한 이유는 뭘까.
비밀의 실마리는 자동차 업체가 더 이상 제조업체가 아니라는 데에서 출발한다. 현대차그룹이 중고차 사업을 추진하는 건 중고차 거래로 새로운 수익을 창출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이유가 있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새로운 모빌리티 서비스를 안정적으로 추진하려면 완성차 생애주기 전반을 관통하는 데이터가 필수적이다. 중고차 사업을 통해 차량 생산, 판매, 소유자 교체, 부품 교체, 고장수리 이력 등에 대한 관리가 필요하다. 이런 데이터를 바탕으로 금융·보험, 운송, 정비 등의 분야에서 새로운 모빌리티 서비스를 적용할 수 있다.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2일 “자동차 산업은 내연기관차의 전동화 전환, 자율주행, 커넥티드카 등 대대적인 패러다임 변화를 앞두고 있다. 이 시기를 놓치면 경쟁에서 뒤처질 수밖에 없다. 현대차그룹은 새로운 모빌리티 사업 구상에 집중하고 있고 이를 위해 반드시 중고차 사업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이라고 말했다.
중고차 사업으로 중고차를 확보하고 있는 해외 완성차 업체는 모빌리티 서비스에 이미 중고차를 활용하고 있다. 볼보는 북미와 독일에서 운영하는 차량 구독서비스 ‘케어 바이 볼보’에 신차급 중고차를 투입했다. 르노그룹은 지난해 9월 새로운 모빌리티 서비스 출시를 위해 유럽 중고차 거래서비스 플랫폼 헤이카의 지분을 인수했다. 당시 루카 데 메오 르노그룹 최고경영자(CEO)는 “헤이카에 대한 투자는 르노그룹이 자동차 수명 주기의 각 단계에서 가치 창출을 늘리려는 전략의 일환”이라고 설명했다. 현대차 관계자는 “구독서비스 같은 모빌리티 서비스를 활성화하려면 향후 서비스에 사용한 차량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에 대한 방안도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도 중고차 사업은 필요하다”고 했다.
앞으로 전기차가 중고차 매물로 쏟아져 나올 시기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점도 현대차그룹이 중고차 사업에 적극적인 배경이다. 실제로 자동차거래 플랫폼 엔카닷컴이 등록매물 빅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지난해 전기차 등록 매물은 전년 대비 81.55% 증가했다. 전기차와 하이브리드 차량이 전체 등록 매물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2020년 12.44%에서 지난해 19.43%로 늘었다.
중고차 책정 가격은 제조사의 브랜드나 신차 가치에 영향을 미친다. 기존 중고차 딜러는 전기차의 적정 가치를 평가하기 쉽지 않다. 업계 관계자는 “조만간 전기차가 중고차 시장에 쏟아져 나올 텐데 그전에 차량을 재상품화하고 성능이나 상태를 정확히 평가할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춰져야 한다. 이를 위해선 완성차 업체의 역할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이용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