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8년 5월 31일 오전 10시 국회의사당(중앙청 홀)에 모인 198명의 제헌의원들은 최고 연장자 이승만을 임시의장으로 추대했다. 이승만은 “대한민국 독립민주국 제1차 회의를 여기서 열게 된 것을 우리가 하나님에게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라며 독립과 건국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이어 북한에서 목회를 하다 월남한 이윤영 의원을 불러 대표기도를 드리게 했다. 제헌의원들은 모두 일어나 함께 기도했다.
대한민국은 기독교 국가가 아니지만 애국의례 대신 감사기도로 첫발을 뗐다. 이처럼 하나님 축복 속에 시작된 대한민국이 20대 대선을 앞두고 무속정치 논란과 신천지 정치개입 의혹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기독교계 원로, 목회자, 평신도, 신학자들이 초교파적으로 성명과 기자회견을 통해 깊은 우려를 표명했다.
무속과 정치의 비정상적인 결합이 국가에 어떠한 악영향을 끼치는지는 2013년 비선 실세 최순실이 기획했던 박근혜 대통령 취임식 ‘오방낭’ 사건 등을 통해 똑똑히 지켜보았다. 그 결말은 국정농단과 대통령 탄핵이었다.
코로나19 초기 집단감염으로 사회에 물의를 일으킨 신천지예수교증거장막성전(신천지)의 사회적 폐해 또한 심각하다. 신천지의 포섭으로 가족이 해체되고 아직도 그 소굴에서 헤어나지 못해 고통받는 이들이 많다. 그런데 국민의힘 대선 후보 경선 과정에서 신천지가 계획적으로 신도들을 대거 집단 입당시켜 윤석열 후보를 당선시켰다는 내용의 전 신천지 간부 증언이 보도돼 파장이 일었다. 전국신천지피해자연대는 대선 후보들에게 이단·사이비 종교집단의 정치권 유착 근절과 추가 피해 방지 대책을 촉구하고 있다.
최근 국민일보 종교국에는 안타까움과 답답함을 토로하는 성도들의 전화가 잇따랐다. 40대 한 성도는 “김건희는 무속 논란 중심에 있고 윤 후보도 최근 신천지 개입으로 논란이 되고 있다. 나는 이재명 지지자가 아니다. 그러나 이 문제는 기독교인이라면 매우 심각한 문제다. 하나님 보시기에 옳지 않다”고 말했다.
목사들의 특정 후보 지지 선언도 짚어볼 문제다. 개신교 목사 777명은 지난달 24일 윤 후보 지지를 선언했다. 이들은 “전국의 목사들이 대거 윤 후보 지지 선언에 동참함에 따라 그동안 아무런 근거도 없이 마구잡이로 제기된 윤 후보의 무속신앙 연루 의혹이나 신천지 유착설이 크게 수그러들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지지 선언 이유가 신앙의 결단이 아닌 윤 후보를 엄호하기 위한 것처럼 보인다. 지난달 17일 개신교 목사 1041명이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 지지를 선언한 것도 신앙의 본질과는 거리가 있다.
목사들도 유권자로서 정치적 입장을 밝힐 수는 있지만 신중해야 한다. 그것이 과연 하나님이 보시기에 합당한 것인지 먼저 살펴야 한다. 지지 선언에는 진영 논리만 있고 하나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대목은 찾기 어렵다. 그래서 기독교의 정치적 편향성을 강화하고 성도들의 자유로운 판단을 흐릴 뿐이다. 한국교회총연합은 성명에서 “20대 대선을 앞두고 지역 교회나 단체가 특정 후보에 대해 지지를 표명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밝혔다.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세우기 위해 순교하고 땀을 쏟은 신앙 선조들과 선교사들이 무속과 신천지 세력에 휘둘리는 대한민국의 현실을 목도한다면 어떻게 생각할까. 이제라도 목회자, 성도들이 기도하는 가운데 통렬히 회개하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올바른 리더십이 세워지기를 간구해야 한다. 박종화 원로목사는 “후보들의 실질적 비전과 정책이 역사의 주인이신 ‘하나님 나라와 그의 의’의 내용과 실천 의지를 담고 있는지 엄밀히 평가한 다음 결정함이 옳다”며 “중요한 것은 ‘우리의 뜻대로’가 아니고 ‘주님의 뜻과 계획’이 이뤄지도록 기도하고 결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무속과 신천지의 장막을 걷어내고 하나님 나라와 그의 의를 이 땅에 실현할 수 있도록 크리스천 유권자들이 예언자적 사명을 다해야 할 때다.
김재중 종교국 부국장 jjkim@kmib.co.kr